여기 동네가 감정이제. 대나무 있는 데를 요끄테. 지금말로는 용미리, 용의 끝이라고 해서 요끄테라고 불러 여기서는 용 꼬리다 이 말이 여, 쭉 내려와서 저기 산위에서부터. 저 앞에는 애남 이라고 불러 옛날 부터. (조사자 : 애남이라는 동네가 있었나요?) 거가 댓 가구 있었어. 그러고 저 건네 돌 서 있는가 그것보고 “돍선 배기”라고 그래 돌이 섰다 이 말이여. 여기 저수지 안막을 때는 저기까 지 배가 들어갔어. 거가 배 맨 돌이 있었어. 옛날 어른들이 그러대 거기 까지 배가 들어갔다고. 지금도 가보면 돌이 있어. (조사자 : 마을 앞들은 어제 만들어졌나요?) 민대뜰. 민대가 지금 먹으면 150살이나 먹었겠어. 민대라는 할머니 가 막았다. 하데. 그런게 민대들 이라고 그래 민대들을 할머니가 막았 다. 고만 들었지 몰라 잘. (조사자 : 샘 이야기 좀 해주십시오.) 샘이 달다 해갖고 감정 마을인데 옛날에 스님이 와서 물맛을 보고 가다가 물맛이 좋다 해서 감정이라 지었다고 그러대. 이 소나무는 옛날 에는 장ㅇㅇ씨라고 옛날에는 소를 쟁기질 했는가 멍에 감을 땄는데 남근이 애래 갖고 그 뒤로는 동네 사람들이 나무에 손 도 안대고 낙엽이 떨어져 도 주워 때도 아니했어. 그 랬다는 전설이 있어. 신목 이다 해가지고. (조사자 : 저도 이 나무 가 신목인줄 알았는데 저 석산마을에 있던 나무가 신목이라고 하데요?) 팽나무.
그것이 지금은 죽어 불고 쪼금 가지에서 순 나가지고 살았데. 그 나무가 왜 그러냐 하면 옛날 우리 어렸을 때는 이 소나무처럼 컸어. 그 나무가 우게서 먼저 피면 그 고랑에서 모를 심어 내려오고, 밑에서 잎이 먼저 나면 여기{감정마을}에서 심고 올라간다고 그랬어. 들에서 고랑으로. 그것이 맞춘다고 그랬어. 그 것 보면 올해 한해(흉년)가 들지, 안 들지 안다고 들은풍월 인데. 지금 살아갖고 쬐깐 하게 있대. (조사자 : 그렇게 팽나무가 신목 이였네요?) 그래서 그 뒤로 우리 어렸을 때 이 소나무에도 줄 입혔었어. 옛날 동네마다 줄 입히는 거 있는 가? (조사자 : 네 줄다리기 한 후에 그 줄) 줄을 입혔었는데 그해 그런 것은 아니고 홍역이 들어가지고 동네 애들이 많이 죽어버렸어. 그 뒤로는 안 입혀 인자. 음력 이월 초하룻날 항시 마을 돈을 가지고 당산제를 모셔. (조사자 : 지금도 지내는가요?) 응. 내가 이장할 때부터 계속해갖고 한 40년인가 모시지. 보호수라 군에서 한가 도에서 한가 는 모르제만 약을 일 년에 한 열 번 더하대. 그리고 밑에다가 영양제도 주고, 퇴비도 와서 놓고 그 러대. 약 하는 사람, 풀 맨 사람, 퇴비 허는 사람, 영양제 준 사람 그러 하드만. 이거 관리 허는데 한 천 만원 들어간다 해. (조사자 : 문화재 관리소에서 하지요?) 응. 문화재 관리소. 도지정문화재 보호수로는 돼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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