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암마을은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초창기에 들어오신 예자 엽자 할아버지께서 “시현재”라는 서당을 만드셔서 후학에 관심을 두었 던 교육의 시초지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서당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것이나, 사료를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조사자 : 500년 정도 되었다면 임진란 무렵이겠네요?) 저희 예자 엽자 할아버지의 손자 되시는 사자 수자 할아버지께서 임 진왜란 때에 병조 방어사라는 관직을 가지고 왜란 때 참여했다는 기록 이 남아있습니다. “(중간생략)” 제각이 “모헌재”라고 하는데 예자 엽자 시조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후 손들을 기리는 제각, 모헌재가 현재 남아있습니다. 신위로 모시고 있지 는 않고 우천 때 밖에서 제를 못 모실 때는 합동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시현재”라는 서당을 만들어서 후학으로 춘사, 죽선, 화암 삼인방의 유 명한 선생님이 있어서 함평과 무안의 돗재 아래에는 학암 마을이 학문 으로 명성을 떨친 때도 있었습니다. (조사자 : 그것이 한말, 구한말 이야기죠?) 그렇죠. (조사자 : 지도로 유배를 오신 김윤식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의 일기에도 학암 마을이 여러 번 나옵니다.)글이 출중하다 보니까 우리 마을에 사는 일하는 머슴도 글을 읽는다 해가지고 우리 마을을 “문 헌방”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다른 고을에 학식 있는 분이 학암 마을에 가서 머슴 사는 아무개한테 물어봐라 할 정도로 당시에는 교육수준이 높은 지역이 학암 마을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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