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자 : 그 초창기에는 그러면 아까 도레미예식장을 쓰셨다고 했는 데 나중에 일로공회당이 사무실로 바뀌지 않습니까. 그게 언제쯤 바꼈 는지 그 이야기 좀 해주시면.)
그런께, 재찬이 때인지 용택이 때이니 그게 이회장이 잘 알제. 내가 잘 알것나.
“(중간 생략)” - 어느 대 회장인지 의견 분분.
긍께 우리 청년회에 기록이 남어 있을 건데. 내 머리 속에 삼십년 전 이야기가 날짜가 다 들어 있을 순 없으니까.
(조사자 : 일로공회당이라는 곳이 어떤 곳이었을까요, 회장님.)
그러니까 그게 우리 재산이 아니라 군의 재산이죠, 그게. 공회당이 란 그게. 근데 그 전에는 거가 뭐 있었냐면 병원이란 게 있었어요. 그 전 에. 개인 병원이었는데 보건소가 생긴 지가 몇 년돈가를 모르것어요, 지 금. 그래갖고 그 뒤로 인제 공회당 그게 어떻게 보면은, 지역 행사 할 땍 에 거기서 그 건물을 많이 이용을 했어요.
(조사자 : 그런께 어떻게 보면 읍민회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됐단 말씀 하시는 거죠?)
그렇지요. 지금 같으면은. 그런께 저것이 사유재산이 아니라 군 재 산인데, 일로에서 그렇게 사용을 했다 이 말입니다. 공회당이라는 저게. 그 노인들 회관이 우리 사무실 폐쇄시키고 저 건물을 다시 지으면서 공 회당이 노인회관으로 바꼈어요 인제.
(조사자 : 다시 얘기하자면 최초의 일로공회당 그러면 개인 건물, 아 까 병원이라고 하셔서.)
글쎄요. 그때 개인 건물인진 어떤지는 모르지만 우리 어렸을 땍에 병원이 있었어요. 의사선생님 이 거가 있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병원을 모르것지요, 행정에 가서 거시기를 해서 쓰는지를 우 리는 그걸 모르지요. 그 건물에 개인 병원이 있었어요. 우리 어렸을 땍에. 뭔 일 나면 그리 담박굴 쳐서 가고 그랬으니까. 어렸을 땍에.
(조사자 : 다른 병원은 없었나요?)
예, 없었어요. 그 병원만 있었어요. 보건소 없었어요. 보건소라는 자체가 없었어요.
(조사자 : 그러면 그게 개인병원 하다가 개인병원 이후로 그 건물이 어떻게 바꼈나요?)
그게 인제 공회당으로 바꼈어요. 공회당으로 바껴가지고 그때 우리가 쓴 게 아니고 다른 걸로 쓰고 있었어요. 우리가 거시기 헌 것은 아닌데 행정에서 관리를 했으니까. 그 당시에 다른 걸로 쓰 고 있었는데, 우리가 인제 거리 행정에다 이야기 해가지고 거리 들어갔지요. 그때 비어있었으니까.
(조사자 : 들어가서 개조도 하고.)
(청중 : 거기 중대본부도 있었고.)
아, 우리 들어가기 전에 중대본부 있었다.
(조사자 : 우리가 들어가면서 개조를 했죠. 중대본부가 앞에가 있고 뒤에는 청년회에서 쓰고 그랬 다니까. 그러다가 나중에 중대본부가 빠져나가니까 우리가 개조를 해갖고 다시 쓴 거요. 청년회에서.)
완전히 고쳤지, 사무실을.
(조사자 : 그래갖고 나가갖고 한쪽을 BBS를 주고 사무실을. 맞어. 인제 생각이 나구만. 긍께 공 회당에 그것을 쓸 때 품바를 거기서 했다는 게 그 말이여. 그것이 공회당 자리여. 초연 했다는 게.)
(조사자 : 그러니까 이게 BBS 아니면 개발청년회가 들어오기 전에 어떻게 보면 읍민회관으로 쓰 였던 개념이었네요. 그렀기 때문에 거기서 인위예술회도 공연을 했었고, 그렇게 진행이 됐다는 걸 로 이해를 하고. 대신 일로공회당의 회관의 개념이 사라지니까 거기를 여러 단체들이 쓸 수 있게, 이렇게.)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회관이라 그러지 않고 공회당이라 그랬어. 좌우지간에. 그 명칭이 공회당 이라는 명칭으로 저것이 사용이 됐어요. 근데 그 건물이 저것이 행정쪽 것이다. 개인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저 건물은 행정하고 계약이 되고, 행정하고 이야기가 돼야 된다라는 그게 인제 그 당시 에 가졌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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