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4_02_MPN_20160626_LDS_KYC_002
    조사장소 :
    해남군 계곡면 황죽리 마을회관
    조사일 :
    2016-06-26
    제보자 :
    김영철(남)
    조사자 :
    이두수, 정진아
    줄거리
    황죽마을은 외지마을이라 시집오겠다는 처녀가 없어 총각들은 서울로 올라가 결혼을 한 후 다시 귀향했다고 한다. 또 황죽은 장군바위와 공알바위가 마주보고 있어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내용

    우리보듬 더 앞에 세대, 결혼 못한 장개를 못 간 구역이 해남군에 네 가지, 네반데 있어요. 결혼 못해, 우리 황죽 살아서는. 장개를 못가요. 아가씨들이 시골이라고 안와요. 시집을. 그런 곳이 계곡면 황죽리, 해남읍 내사리, 황산면 한자리 그렇게 살아서는 장개를 못 간다고 그래요. 그랑께 우리 마을 사람들은 유득이 장개 갈라믄 서울로 가요. 서울로 외입을 나가는 거여. 외입을 나가가지고 인제 이를테믄 거기서 공사판에서 일을 해요. 그라믄 뭐하냐믄 공사판에 사장이라고 그래요. 그래갖고 결혼을 해요. 말하자믄. 결혼해갖고 다시 들와서 살죠. (조사자 : 한자리, 그다음 내사리, 황죽리 또? 한군데, 네 군데 있어야 되는데 한군데 없는데) 잉, 세 군덴거임마. 세군데. 그라고 인제 뭐있었냐 하면은 우리 마을이 인물이 안 나온 곳이에요. 젊은 사람들이 다 젊어서 사람들이 죽어부러요. 황죽이. 그런 전례가 있는 거에요. 왜 죽었냐 하면은 이, 우리 마을이 무엇이 문제냐 하면 다른 마을은 뒤켠에가 또 나가는 길이 있잖아요. 우린 여기가 막창길이에요. 한길이에요. 그랑께 이리 들왔다가 다시 나가야 돼요. 이 길로. 그랑께 저 할머니들이 꽉 막혀있는 거에요. 이거이 문제예요. 우리 마을이 내가 살아보니까. 그러니까 제가 좋은 프로그램을 늘 해요. 지금도 문화체험 프로그램이라고 매주 토요일 날 할머니들 치매 안 걸리게 종이접기하고 이런 거 한디 할머니들이 참여를 안 해요. 왜 안하냐면 고정관념에 딱 잡혀 있은 게 안하는 거에요.

     

     

    그러니 나는 욕심이 많아 가지고 여기 들와서 살면서 이 한글공부방이랑 노인대학을 했으면 했어요. 그래갖고 뭐 이를테믄 아, 이를테믄 해남에 YMCA 총무님보다도, 뭐야 이사님들보다 ‘여기 와서 강의 한 번 좀 하쇼!’ 그라믄 뭔 요구르트라도 사갖고 와서 하지 않것소잉? 그런 강의를 좀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할라고 했는디 할머니들이 먹은 것, 돈 아니면 절대 안 모탭디다. 그거 준닥하면 모를까 안 해. 그래갖고는 하다가 말어부렀어요. 그라고 인제 우리 마을에 인물이 안 난다는 전설이 있어요. 왜 안 나오냐면 이 뒷산에가 장군바위라는 바위가 있어요. 장군바위. 장군바위가 있고 저 건너편에는 여자 성기를 상징하는 공알바위가 있어요. 장군바위하고 공알바위가 마주보고 있었어요. 그랑께 서로 마주보니까 우리 마을은 단명하고, 남자들이 단명하고 인물이 안 난다 그랬어요. 그란디 남자들이 대차 다 단명 하는 이유가 뭐이냐믄 막창이어서 막걸리를 얼마나 묵어부렀는지 여기서. 막걸리를. 막걸리, 계곡주조장 막걸리를 다 갖다 묵었어. 우리 마을에서. 그렇게 묵어 데꼈어요. 그래갖고 젊은 사람들이 다 죽어부렀어. 인자. 다 죽어 불고 거의 사람이 없으니까 그때는 나무도 해 때고 그런 시기라. 그랑께, 그란 뒤로는 숲이 우거지니까 그 장군바위하고 공알바위가 마주보게 못하게 나무가 게려부렀어 지금. 나무가 가려 부렀어. 나무가 숲이 자라서. 나무를 안 해 때니까. 장군바위하고 공알바위가 둘이 마주 못 봐. 나무가 가려져서. 그란 뒤로는 참말로 인물이 나는 거에요. 우리 마을에서 교수도 생기고 이렇드믄 고시한 사람이 출향 인사 중에 고시한 사람도 생기고, 인자 뭐 이렇드믄 저 뭡니까요 경찰서장한 사람도 있어요. 말하자믄은. 그런 사람들이 생겨나요. 그래서 내가 인자 저 장군바위라 하지 말고 건강바위라 합시다. 할머니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건강바위라 합시다. 그렇게 인자 장군바위라고 부르지 말고 건강바위라고 부릅시다. 그랬어요 인제. 그라고 우리 마을이 상당히 여가 거의 100호 살았어요. 옛날에는. 100호 살 때는 이 자리에가 그 동지기가 있었어요. 동지기 이 마을을 지키는, 마을 심부름한 사람. 마을 심부름하는 그 사람이 옛날에는 그 사람한테 ‘어이’ 했잖아요. 어하고서 그 사람이 마을 심부름하고 사는 거여. 심부름하고 산디 그 양반이 저 장군바위 위에 가서 앳소리를 해. 인자, “누집 결혼식하요~ 누집으로 모이쇼” 이런. “아, 오늘은 여러분들 울력을 합니다.” 그걸 인자 목소리로 하는 거에요. 엠프소리가 없으니까. “바작지고 지게에다 바작지고 울력 나오쇼” 그라고 소리를 질러요. (조사자 : 장군바위 옆에서?) 장군바위 위에 올라가서. 위에 올라가서 이쪽으로 돌아보고 옛 마을 보면서. 그랬던 것이 지금은 그것이 사라졌잖아요. 그거이 중요한 이야기예요. 이거는 없더라고요 거의. 엠프 사용하기 전에. (조사자 : 그때는 인자 그런 시설들이 없었은께 저 위에 올라가서 하믄 마을에 다 들렸겠구만요.) 예 그러죠. 이렇게 하면서 “저 오늘은 마을에 울력합니다. 저 지게에다 바작지고 울력 나오쇼” 그라고 앳소리를 하는 거에요. (조사자 : 그전에도 다른 분이 하셨고요?) 그랬죠. 그랬는데 나 알 때까지는 그 양반이 돌아가시니까 인자 이렇드믄 엠프 시설이 나오고잉, 그렇게 해가지고 인제 이렇게 좀 바꿔진 거에요. (조사자 : 그러면 여기 들어오는 길 나가는 길이 한길밖에 없다고 했잖아요.) 한길밖에 없어. 역서 막 들왔다가는 다시 나가야돼. 이 길로. (조사자 : 그래서 인물이 안 나오고 할머니들이 꽉 막혔다고 했는데 길 뚫을 생각을 안했어요?) 아, 길을 뚫을 데가 없어. 더 이상. 산이 다 막혀 불고 그랑께 인제 다른 마을 내가 댕겨보면요, 다른 마을은 장사라도 와요. 이불이라도 팔러 오고 양말도 팔러 오고 고기라도 팔러 오니까 그 사람이라도 만나. 이 할머니들이. 그러니까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거에요. 그 사람들 이야기도 듣고. 그란디 우리 마을사람들은 오로지 당신들이 앉어 갖고 놀기만 한 거에요. 그란디 절대 이거 문제가 있어요. 인자 좋을 수도 있죠. 원체 여기가 여기는 나는 이 황죽은 황죽대로 이렇게 보존해야 할 마을이에요. 자연과 함께 이런 거 참 보존하면 좋겠다. 그래갖고 내가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드믄 여기 들어와 산지 거의 10년 됐거든요. 내가. 그랬는디 그때만 해도 수세식 화장실 한 사람도 없었어요. 수세식 화장실이 뭐인지 모르고 살아. 그랑께 서울에서 자식들이 여기 명절에 오믄 똥 싸러 해남읍까지 갔어요. 똥 누러. 인자 재밌는 예로, 우리 마을 아가씨가 미국남자랑 결혼을 했어요. 그래 갖고 미국남자가 미국사람이 와서 화장실에 똥을, 대변보러 갈 때 신문지 깔아 줬어요. 거기다 대변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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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13-황죽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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