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06_02_01_FOT_20160803_RJS_0006
    조사장소 :
    고흥군 고흥읍 호동리 호동마을 호동마을회관
    조사일 :
    2016-08-03
    제보자 :
    류제상(남, 79세, 1938년생)
    조사자 :
    서해숙, 김영미
    줄거리
    6. 25 때 호동마을로 피난 왔던 신오유, 신지우 씨를 마을 사람들이 잘 감춰주고 도와주어서 전쟁 후에 무탈하게 자기 사는 곳으로 돌아갔고, 신행식 국회의원도 이곳에 피난 왔다가 이후 무사히 돌아갔다고 한다. 이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어른들 말씀에 따라 살았기 때문에 여느 마을과 달리 사상의 격랑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하게 지켜내고 살아왔다는 이야기이다. 청중은 류제창이다.
    내용
    (청중 : 6․25사변 때 신오유, 신지우 씨가 우리 동네 살았어요. 고흥읍에 산 사람인디, 신오유 씨나 유명한 사람이거든. 우리 마을로 피난 왔다 그 말이여. 우리 마을에서 살아 나갔어. 총 들고 잽헸으면 죽을 거인디 우리 마을에서 살아 갔제.) 우리 마을 사람들이 어뜨케 단체가 좋고, 그런 걸 잘 감춰주고 해가지고. 그래가지고 그분, 두 양반들이 여그서 참, 피난해갖고 살아가셨어요. 그래, 그 양반들이 ‘참, 호산 같은 인심 좋은 디가 없드라!’ 고 그런 말을 해쌓지요. 그람, (제보자가 조사자에게) 혹 신행식 씨 아시오? 신행식. 그, 공화당 때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하고… 박대통령 적에 건설부 장관 하고 그랬어. 그 신 장관 아버님하고, 또 신 장관 아버님 집안사람하고, 그 두 양반들이 여그 호산 오셔서 피난해갖고 6․25가 끝난 뒤에 가셨어. 그렇게 살아가셨어요. 이 건네 마을, 저 옆에 돌아가믄 강천마을, 비아는 인자 김씨들 마을이고. 그런데 이 삼 개 마을은 전부다 우리 류가 마을이에요. 그런디 (좌익 활동하던) 그런 사람들한테 가담되지 않고, 그래갖고 선직 어른들이 “느그들 절대 어른들 말 안 들어서는 안 된다. 어른들 말 꼭 들어라!” 그래가지고, “어른들이 한번 말하자면 대저 어른들 말씀대로 해야 된다.” 하고, “그런 중만 알아라.” 그랬더니 과연 어른들 말 듣기를 잘했다 싶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때 여순동란, 6․25동란, 이때 한나(하나)도, 피해 한나도 본 사람이 없어요. 그대로 딱 들어 지켜 나왔제. 사람들이. 그래가지고 다 두원, 두곡이란 디(곳), 관덕 저런 디는 영, 마을이 소가 돼불었어. 그런 디는 피해가 많았어요. 어르신들이 절대 그런 데 나가지 말라고. 다 어른들 말씀 듣고 대저 그대로 했죠. 그니까 대저 그런 피해가 안 오고, 그렇게 무난히 넘어갔죠. (청중 : 타 부락은 서로 기양 좌파 사상에, 사람들이 그때가 머슴 살고 천한 사람을 충동시키믄 당장 가니까 피해를 많이 봤고. 우리 부락은 어른들이 한번 말씀하시면 무조건, 무조건 따라야지. 후레자식 말 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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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_02_01_FOT_20160803_RJS_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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