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4_02_FOT_20161202_KHJ_LDJ_002
    조사장소 :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 824-1
    조사일 :
    2016-12-02
    제보자 :
    임도진(남·83세)
    조사자 :
    김현정
    줄거리
    흑석산에 절이 있었는데 빈대 때문에 이사를 갔고 은굴은 워낙 길고 깊어 바닷가 갯벌과 연결됐을 것이란 이야기.
    내용
    가만 거가. 절이 지금도 큰 단장, 작은 단장 그러고 절터가 있어. 지금도 있어. 거기 중들이 살았는데 갑자기 없어져, 갑자기 따라가 버렸어. 어째 따라가 브렀다냐 하고 보니까 빈대. 그게 우리도 보면 빈대가 옷이 껌해브러. 그래 그 빈대 때문에 못하고 다른 데로 이전을 했다 그라거든. 지금도 절터가 있어 큰 단장, 작은 단장 그람 거기 가서 보면 접시꽃 나무가 지금도 살아있어. 가 인자 있는 것은 20년 30년 됐어. (청중 : 사람살기 뒤로 접시꽃. 씨앗을 떨어트렸다. 계속 있었다고잉.) 절이 두 개가 있었다고 그래. 우리도 모르지야. 우리 어려서 보면 얼마. 뜯은지 안되었어. 우리 어려서 그 나무하러 가면. 그 인자 흑선산 쪽 올라가면 은굴이라고 있어. 해남멀티에도 나왔을 거여. 에, 은굴에 가면 우리 어려서보면 나가 은굴을 가보면 상당히 높아, 근께 못 들어가 캄캄해 갖고. 캄캄해 갖고 못 들어가. 못 들어 가믄 인자 촛불을 싸갖고 가. 그러면 켜도 촛불을 싸갖고 가도 초가 바람도 안 불지만은 그, 물 찬기가 있어갖고 깊게까지 못 들어가 늦게까지 못 들어가. 거기서 어디로 빠지냐면 내 얘기지 갯벌바닥으로 떨어진다고. 거기서 빠지면 내 얘기지 갯벌로 나온다고. 그런 전설이 있어. 그랑께 지금도 가면 있을 것이여. (청중 : 실제로 일본사람들이 은 팠던 굴이라 해, 실제로 거기서.) 그랑께 은굴이라고 해, 그랑께 실제로 팠는가도 몰라 . (청중 : 일제시대 때 팠다 해.) 그랑께 은굴이라고 했고만. 저기 흑석산에 저 철이 많이 들었다했다고. 그때 예전 때 해방 되어부러갖고 안해부렀제. 영락없이 할 것 인디. 근디 명산이라 해. 해남 명산이라고 그 산이 우리가 국민학교 다닐 때 670m된다고 해야. 해발, 그것이 상당히 높아.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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