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0_11_FOT_20160721_KHH_KBS_0001
    조사장소 :
    보성군 회천면 (천포경로당에서)
    조사일 :
    2016. 7. 21. (오전 9시30분)
    제보자 :
    김복삼 76 남 토박이
    조사자 :
    김현호
    구현상황
    천포경로당에 여러 번 방문한 끝에 구술 녹취를 할 수 있었다. 경로당에 함께 있던 어르신들도 옛날 생각이 나는지 구술에 끼어들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했다.
    줄거리
    김장포는 연동 마을 동쪽인데 옛날 이곳은 고흥 금산 녹동 소록도 완도 금일 등지에서 중선배가 들어와 식량과 나무 등 생필품을 사가던 포구였다. 바닷물이 많이 드는 씨 때에 배가 들어오면 다음 씨 때까지 한 달을 기다렸다가 출항했다. 생선과 생필품을 교환하는 물물교환도 이루어졌다. 김장포는 고흥 완도 등지의 섬에 생필품을 공급하던 포구였다.
    내용
    김장포란데가 왜 김장포냐 그라며는 지금 고흥 금산 녹동 소록도 머 쩌그 완도 금일면 까지도 김장포에서도 그 사람들 생활 거식 식량 연료 나무 또 김발한데 저 뭐야 그것보고 뛰. 뛰라고 있어 이르케 키 큰 거. 뛰 짚단 이른 것을 전부 김장포에서 실어 갔네. 그르케 해서 자기들이 사갔어. (아까 김장포가 장소가 지금 어디라고요?) 거 저 객산 가다 보면은 연동 지나서 거가 우리 큰댁이 있어. 그래 가꼬 요새 지금 집을 짓네. 거기. 도로 내면서 그 흙을 거기를 저 매립을 할라고 흙을 우리 산에서 군에서 파다가 거그를 하면서 밭도 만들어 주고 그 안에 있는 공유수면을 매립을 해줬어 사용하라고. 그래가꼬 거그를 지금 하우스를 지어 놨어. 그란디 그 하우스 안으로 논을 예순 세평을 복호 형님이 사가꼬 거그 따가 인자 쬐깐한 집을 지어가꼬 인자 여테까지 살았는데 거기가 김장포 자리여. (길나기 전에는 그 안 쪽 이었겠구만요? 길 안 쪽?) 하 바다여 바다. 지금 거 가면은 저 물이 들면 물이 들오고 하는 그 공유수면이 있어. 거그 그와 같은 똑같은 바다였어. 거기가. 그랑께는 한 씨에 그랑께 음력 15일 이빠이 될 때 큰 배가 들어와 중선배가. 거기 그라고 한 달을 완전히 거기서 먹고. 그라고는 못나가 인자 물이 들우와도 얍퍼서 뜨들 못하니까. 응. 그 다음 달 씨에 인자 그믐달 씨에 또 나가고 그러면서 거기서 인자 소나무 가지 친거 말린 것 연료로 또 쌀 보리 저 그른 것을 전부 거그서 사가지고 저 금당도 금산 소록도 머 평일도 이른데 까지 다 나갔네. 내가 생생해. 그것은 나도 그 장사를 했어. 그라고 여그 문천도 씨 젤로 박영팔씨 박 머이야 동열 씨 또 아부지도 그른 장사도 했어. 그라고 또 자네 인자 또 큰아부지 재욱씨 그 아제도 했고. 그것을 전부 지게로 저가꼬 가서 배에다 실고가서 가져가고 한 보름 간 먹으면서 고기하고 쌀하고 교환하고 짚단하고 교환하고 나무하고 교환하고 해가꼬 실고 가서 거기 가서 팔고 그랬어. 그라고 인자 천도씨나 박영팔씨 이렇게 대상하신 분들은 그 풍선 배 돛단배 그 배에다 실고 가서 팔고 오고 그랬어. 순전히 그 장사 했네. 그래가지고 그 고흥 일대 완도 일대 섬사람들이 생활 수단을 완전히 여기서 해 갔다 하는 것은 이건 뭐 틀림없는 사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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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0_11_FOT_20160721_KHH_KBS_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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