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0_10_FOT_20160706_KYK_KJH_0004
    조사장소 :
    보성군 득량면 양월길 31-6
    조사일 :
    2016. 06. 10.(수)
    제보자 :
    김장한, 73세, 남, 대졸, 토박이
    조사자 :
    김용국
    구현상황
    지난번 설화 채록 때 약속한 대로 전화를 드리고 댁으로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었다. 아주 반가워하시면서 의미있는 득량면 충의로를 직접 답사를 안내 하시는 것처럼 친절하고 자세히 구술해 주셨다.
    줄거리
    옛날에 사랑방은 각 리에 하나 정도 있었다. 사랑방에는 일꾼이 다섯에서 칠팔 명씩 사는데, 손님들은 그 들과 같이 잤다. 사랑방에 주무신 분들은 어떤 분은 글씨를 써주고, 어떤 분은 한약 같은 단방약을 이야기 해주고, 하루를 살다 갈지라도 밥값은 해주려고 노력을 했다. 일손을 돕기도 했다. 특히 박약국으로 유명한 박병춘씨 댁에 유명한 사랑방이 있었다.
    내용
    사랑방은 각 리에 한나 있거나 둘 있거나 그랬어요. 집 있어도 안내줘요. 그때는 일꾼을 한 집이 다섯에서 칠팔 명씩 고용살이를 하고 그랬죠. 그분들과 같이 자야 돼, 방이 넓지요. 그분들이 오시면 그러면 일꾼들과 똑같이 밥해드려요. 추우면 이삼일 정도 쉬었다 가시죠. 냄새도 나고, 소밥을 끓여주는 솥에다 물을 끓여가지고, 목욕을 깨끗이 하고 그래요. 어떤 분은 글씨를 써주고 가고, 어떤 분은 한약 같은 단방약을 이야기 해주고, 하루를 살다 갈지라도 밥값은 해주려고 노력을 하죠, 하다못해 일손을 돕기도 하고, 남자들은 그러는데 아주머니들은 보기고 타깝고 식모들 방에서 며칠씩 같이 계시고, 일해주면 그냥 못 보내죠. 일을 해주면 그때는 임금이 썼잖아요. 하루 일하면 쌀 한되 아니면 두되 밖에 안줬는데 그때 조문 할 때 30원 했잖아요. 30원이라도 드려야죠. 예를 들어서 나이를 많이 자신 분들 상투 쪼시고 이가 드글드글 그란디 그분들이 와서 죽어분 사람도 있어요. 근디 아니까 누구 할아버지다. 일꾼들이 이불에다 싸다가 그 집에다 운반을 해 주기도 했어요. (참 좋은 일을 하셨네요.) 그래서 6.25 , 여순반란 때 안 죽고 산거에요. 예를 들면, 장가 못 간 사람 장가 보내주고, 집 지어서 논이라도 뗴어 주었죠. 그 사람들은 지금 우리보다 훨씬 잘살아요. (박약국으로 유명한 분이 되셨다면서요?) 박병춘씨댁, 한의학계에서 이 할아버지를 다 알거에요. (이분 댁은 위치가 특별해서 많은 분들이 오셨나요?) 위치가 특별이 좋아요. 언제든지 따뜻하게 해드리고 (이분 후손들도 잘 배웠는가요?) 아, 다 잘 배웠지요. 거기가 순천하고 장흥하고, 중간이고 , 복내와 옥과에서 여기 오거든요. 경백으로 해갖고 옥과, 장흥 갈려면, 순천 쩌쪽 광양 성황, 진주 그쪽에 올라 장흥 광양 성황에서 가야해요. 내가 여기서 걸어서 성황에서 진주 까지 걸어다녔어요. 애린 것을 뭘라 데리고 다녔는지, 진주 진양가 우리 산소가 있어요. (박약국에서 숙식 도 제공했나요?) 숙식도 해주고, 약도지어주고 , 감기가 걸렸으면 약도 지어서 병도 나아졌어요. 올해는 아니지만, 감기약 세 첩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겨울에는 어땠나요?) 새끼도 꼬고, 그 집에서 약을 잘라요. 작두질 어떤 사람은 약을 볶아요. 지금은 믹서기로 갈지만은 조그만 도구통{절구통}에다가 도구질을 하거나, 찧고 치고 그래서 가리를 내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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