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0_09_FOT_20160713_CSE_JIS_0001
    조사장소 :
    보성군 조성면 조성경로당
    조사일 :
    2016. 7. 13 (수)
    제보자 :
    정인석, 87, 남, 고졸, 토박이
    조사자 :
    최성은
    구현상황
    보성 조성경로당에 들러 경로당을 날마다 출입하시는 정인석 어르신을 만나 경로당에서 녹음을 했다. 정인석 님은 조성면장을 역임하시면서 새마을운동을 추진하셨던 분이다.
    줄거리
    정인석님은 백부님에게 양자로 갔고 조성공립국민학교 해방후 1회 졸업생이다. 1949년 군에 입대해 6.25 전쟁을 몸소 겪으시기도 한 참전 용사이다. 1954년 2등상사로 제대후 일이 없어 면사무소에 들어가 임시서기를 시작한 것이 공직 입문의 길이 되었다. 공채 시험에 합격한 후 20여년간 조성면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군대에서 상사로 있던 양재범씨가 보성군수로 발령되 오면서 군청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곧 양재범 군수는 서울시로 발령받아 갔는데 후임으로 온 황두영 군수의 배려로 조성면장으로 발령받게 되었다. 이후 1973년부터 1988년까지 15년간 조성면장직을 수행하면서 조성면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내용
    (존함이 어떻게 되신가요?) 정인석입니다. (네 거 조성 면장님을 지내신 것으로 아는데 어 어디서 나가지고 면장님까지 되셨는지 그 말씀을 좀 해 주시면은 좋겠습니다) 예 제가 그 생활이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 나가지고 제가 양자를 갔는데 호적에 가면은 양자로 하지를 않고 바로 아버님이 출생을 저를 시켜 놓으니까. 백부님이 데리고 가서 친자로 그냥 출생 신고를 해 부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실 연령에 비해서 일년이 더 빨리 실려 가지고. 지금 나이가 1930년생. 에 87세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거 초등학교는 인자 무난히 갔는데 (어디 학교로 갔습니까?) 조성초등학교 학교별로 해서는 23회 졸업인데. 해방후 1회 졸업생입니다. 해방후 1회 졸업생인데 제가 졸업을 한 것이 1946년 7월 26일에. 그러니까 해방은 45년 8월 15일 되었는데 인자 그 당시 저희들은 일본어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한글교육을 한다 그래가지고 1년 더 연장을 해서 인자 그 다음해에 1946년 7월 25일날 졸업을 했지요. 그래갔고 해방후 1회 졸업생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진학을 할라고 그랬으나 생활이 좀 어렵고 그러기 때문에 진학을 못하고 에 1949년도에 그러니까 학교 졸업하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3년 집에 있으면서 놀다가 1949년도에 군에 복무를 했습니다. 그 당시는 영장에 의해서 군에 입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지 지원을 하게 되면은 상당한 신체검사라든가 이런 검사를 거쳐야 가는데. 거기서 제가 유일하니 쪼금 기억나는 것은 그 해에 1949년도에 옴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병명 옴. 예 손톱 사이에서 막 진물이 나오고 그런 거이 있는데. 저는 그 손에는 안 나오고. 이 하 하에 저 뭐이냐 항문 있는데 그 짝에가 그것이 나오고 그래서 옴이 올라가지고 있는데. 옴이 가려울 때 긁으면은 그렇게 기분이 좋은 것이 옴 올라서 긁어봤냐. 이렇게 해서 옴이 많이 올라 있는데. 군에 복무를 했는데. 아니 신체검사를 하는데 그걸 가리고 옴 나온 것이 발견이 되면은 전염성이기 때문에 입대가 안됩니다. 그래서 고놈을 빤스를 덜 끄집어 내리고 그것을 합격을 해서 군에 입대를 해서 5년동안 군 복무 생활을 했습니다. 근데 5년동안에 복무를 하는 동안에 어떤 일이 벌어졌냐 그러면은. 에 1950년 6월 25일날 6.25전쟁이 벌어졌지요. 예 그때 제가 군복무 시절이라 참전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서부전선으로 입대를 아니 진 진격을 했어요. 서부전선으로. 그래서 제가 계속 싸우다가 에 제가 그 53년도에 제가 부상을 당했지요. 그래갔고 총상을 당하고 제가 그 총상 당한 부분을 완전히 낫으고 그래놓고 그다음에 군에 계속 전진하다가 육군 2등 상사로 1950 에 4년도에 예편을 했습니다. 1954년도에 2등상사로 예편을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예편을 해서 집에 와보니까 이거이 뭐 직장도 마땅치를 않고 갈디도 없고 초등학교 나온 사람이라. 갈수 없었는데 어떤 용기가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제가 살고 있는 마을에가 면장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어디 마을입니까?) 예 봉릉리 신방마을. 에 그런데 그 마을에 선정현이란 에 정현씨란 분이 면장을 하고 계셨는데 그분한테 찾아가서 제가 월급은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면행정을 좀 배우고 싶으니까 임시서기로 좀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이야기를 드렸더니 아이구 어찌게 월급을 안주고 사람을 등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안된다고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고심을 한 끝에 제가 이 소재지에를 나와서 친구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야 이놈에 뭐땀에 면장한테 가서 그 이야기를 하냐. 자유당 위원장한테 하면은 자유당위원장이 면장한테 하면 무조건 받아 주니까. 자유당위원장 한테 그 자유당위원장이 그 당시 청능마을에 강대직씨란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인자 그 자유당위원장이었어요. 면당 위원장. 그래서 제가 그분 집으로 찾아가서 만나서 아이저 면서기 좀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아 그러냐. 너 참 면서기 하면 되겠다. 그분 말씀이. 그래가지고 그 양반이 즉시 그냥 면장한테 이야기 해가지고. 다음날 나오라는 거여 면사무소에를. 면사무소에를 나오니까. 그 인자 저희 마을에 사는 면장이지요. 초등학교 때부터 제가 그분 면장 출근하면은 그 뒤 자전거 뒤에 따라 다니고 그래서 얼굴도 알고 그러지요. 그랬는데 그 면장이 와서 근무를 해 보라고. 서무계장입니다 그 당시에는 총무계장이 아니고 서무계장 되신 분한테다가 이 사람 임용절차를 갈쳐 주라고. 임시직원으로. 그래서 임시직원 제가 사령을 받았는데. 월 2천 6백원. 예 그 당시 임시직원 월급이. 그걸 받고 제가 한 1년 동안 임시 직원으로 다녔습니다. 그래가지고 면서기 시험이 있다 이야기에요. 군에서. 그런데 그때는 제일 말단직이 지방 4급 공무원입니다. 그래서 저희 면에서 열여덟 사람이 그 시험을 봤어요. 그런디 단 두 사람만 합격을 했는디. 그 중에 제가 한 사람이고 한사람은 저희 1년 선배인 감동마을에 사는 분인데 그분이 합격을 하고 그래서 18명이 가갔고 두 사람만 합격을 하고 16명은 불합격이 되었는데 불합격 된사람 중에는 정식으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도 있고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인자 면서기 시험이 되아서 이 면에를 다니고 있는데 그 시험 합격을 합격증 유효기간이 1년입니다. 1년 안에 발령을 못 받으면은 다시 시험을 봐야 쓴다. 그 당시. 그래서 상당히 고심을 했는데. 제가 봐서도 그 옛날 이야기지만 그 면서기 합격 안한 사람을 면장이 임명을 두 사람이나 했어요. 두 사람이나. 저 놔두고도. 근데 저는 배경도 없지요 돈도 없지요. 뭐 정치적으로 어떤 뭐 우게서 눌러 줄 사람도 없죠. 이렇게 때문에. 오직 그 성실하니 일만 내가 착실하니 하면 되겠다. 그런 신념으로 제가 열심히 일을 많이 했죠. 그랬는데 두 사람 한 다음에 누가 자리를 비워야 인자 또 발령을 해 주기 때문에. 비어 있는데. 제가 그 당시에 면에서 근무를 하면서. 산업계장 하신분이. 그 저희 그 인접 마을에 사는 안지오씨란 분이 계신데 이번에는 너를 발령해 안 해 주면은 내가 나갈테니까. 내 자리를 임명하도록 내가 면장한테 이야기 해 놨으니까. 이번에는 틀림없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해라. 그래서 9개월만에 그런께 합격된 9개월 만에 제가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면사무소에서 어언 한 20년간 근무해갔고 지금 6급 그렇게 올라갔죠. 그래갔고 여기서 재무계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었는데. 다행히도 군[軍]에서 에 복무 중에 제가 상사로 모셨던 분이 아이 여기 보성군수를 왔습니다. 보성군수로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예예 그 분이 양재범 군수라고 이 약 4개월간 군수 있다가 서울로 올라가신 분이어요. 예. 그런디 그분이 어떤 분이냐 그러면 그 에 박정희 대통령 그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 시절에 내무부장관 하신분 하신분이 저희 연대 연대장이었는데 그분이 인자 이 대대장으로 데리고 있었어요. 그 양재범씨를. 그랬는데 중령 시절인디 불다 놓고 너 거 나도 인자 장관 안하고 나가니까 나 있는 동안에 너 군수로 한나 되겠는데 어느 군수로 보내 주라냐. 내무부 장관이. 그러니까 제가 제일 적은 군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래가지고 그 예편과 동시에 제일 적은 군이 그 당시 장성군, 그러안하면 요짝 구례군인데. 그래 장성군수로 발령이 났어요. 그 양재범씨가. 초 초범으로. 제일 첫모냥. 그래가지고 거가 있다가 한 6개월만에 보성군수로 왔습니다. 그래서 인자 그동안에 인자 그 전화연락도 잘 안되고 서신으로 하고 전화가 잘 안되고 그러니까 그랬는데 연결이 되았는데 그분이 보성군수로 부임을 하셔 갔고 에 거뭐 특별히 저희 이름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거 6급이상 공무원들 명단 중에서 행정계장한테 지시하기를 이 정인석이란 사람을 찾아라. 그런께인자 조성면에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은 내 차 보내가지고 자네가 직접 가서 나를 데려고 와라 이야기여. 그래갔고 퇴근시간 후에 인자 그 당시에는 군수 차 하나뿐입니다. 보성군내에 지프차 같은거 하나. 그런데 인자거 행정계장하고 기사하고 와갔고 저를 태우고 군청 인자거 사택으로 관사로 가갔고. 군수 내외분을 뵈옵고. 참 보듬고 얼싸 안았지요. 인자거 죽어분지 알았는데. 서로 인자 만나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이야기를 하시면서. 면사무소에서 요렇게 20년쯤 있었는디. 군청으로 오고 싶은 생각은 없냐고 물어 보드라고요. 근디 이거이 군청으로 오고 싶은 생각이 있으나 굉장히 그거이 인자 거 힘들었다고 그랬다고 그러니까. 알았다고 가 있으라고. 딱 그렇게 이야기 하더니 저 한사람을 끌어 들이기 위해서 인자 딱 집어서 나 혼자만 끄집으면 안되니까 여하튼 15명을 읍면직원 교류를 이렇게 할 땍에 그렇게 올라간 거여. 그렇게 해갔고 제가 세정계 군청 세정계 차석을 하다가 인자 또 한 1년 있다가 경리계 차석을 했어요. 예 그러다가 경리계 차석으로 있는 통에 인자 군수가 인자 그 한 4개월정도던가 6개월정도 4개월정도 했것네요. 양재범 군수가. 그랬는데 가시면서 그 당시 행정계장하고 감사실장한테다가 나를 좀 부탁한다 그렇게 하고 서울시로 전입출을 했어요. 그분은. 그래갔고 서울시에 가서 물동과장을 하셨어. 그분이. 그 다음에 나중에 관악구청장도 하고, 서울 중구청장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분이 인자 그렇게 해서 그때 그분은 올라 가시고 나는 인자 군에가 있는데. 그 뒤에 군수가 황두영 군수라고 오셨어요. 황두영 군수. 그래서 그 분이 인자 제가 경리계 차석을 하다 보니까 결재를 맡으러 군수님실에 자주 가지요. 그렇게 했는데 다행히 인자 여기 또 조성면에가 면장이 공석이 되어 있으니까 너 가거라 그런 이야기에요. 그래서 저가 선배가 세분 있는데 거기를 어찌게 갑니까. 저가 다음 기회에 갔으면 안되겠습니까? 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 군수 말씀이 항상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가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지역에 있는 국회의원들의 동의를 얻도록 되어 있어요. 내부적으로. 그것이 공개된 사항은 아니지만은. 그 당시 우리 군에 국회의원이 신영식 장관이라고. 건설부 장관도 하시고. 국회의원인디. 그분한테다가 인자 그 군수가 인사를 할라고 그러면 면장 인사라. 적은 인사는 이야기를 않지만 그 읍면 면장 인사를 할라면 그분한테 동의를 얻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분 말씀이 그것은 임용권은 군수한테 있으니까 군수가 알아서 하되 꼭 정치적으로 그것을 자문을 좀 그렇게 동의를 받고 싶다고 그러면 보성군에 사무국장에 박영석씨라고 계셨습니다. 박영석씨라고. 그분이 사무국장인께 그분하고 협의를 해라.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그분한테 인자 협의를 얻으니까. 아이구 보내도 된다고 이야기 했던가 인자 조성면장으로 가게 되어서. 제가 조성면장으로 부임한 것이 몇 년도에 했냐 그러면은 에 1970 에 1973년부터서 조성면장으로 에 1988년까지 만 15년 동안 제가 조성면장으로 부임을 했습니다. 그래서 면장 발령과 동시에 여그 선 선 선배들 세분을 만났어요. 아이 면장으로 꼭 가라고 그래쌌는디 어쩌면 되겄습니까? 그러니까 부면장 하신분이 저희 친구 친형이기 때문에 저도 말씀도 올려서 하고 참 좋은 분이었는데. 그 분이. 아이 오십시오. 내가 내부적인 것은 내가 관장 할테니까. 외부에 나가서 일선에서 그냥 뛰기만 하면 면장 되고 그러니까. 정치적인 상황만 잘 하시면 됩니다. 그런께 오시라고 그래서 제가 부득히 그냥 부임을 했어요. 쭉 15년간 그렇게 면장을 하다 보니까 면장하는 동안에는 인자 박정희 대통령 치하에서 인자 했기 때문에 그 당시 모두 거 일선 여그 지방까지 순회를 한디 우리 조성역을 열차로 통과를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래서 거기서 내려서 인자 그 지역가면 면장이 제일로 거시기 하니까 면장하고 악수하고 차로 이렇게 가시고 차가 세웠다 가시고 박정희 대통령 하고 손잡고 악수도 한번 드려 봤고. 끝. 이하생략 인자 그 새마을사업이라든가 이런 것이 나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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