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0_08_FOT_20161025_KYK_HJ_0004
    조사장소 :
    보성군 문덕면 산정길 69
    조사일 :
    2016.10.25.(화)
    제보자 :
    현장스님, 60세, 남, 중졸. 원주민
    조사자 :
    김용국
    구현상황
    현장 스님께 몇 차례 연락을 드렸다가 오후에 들르라는 말씀을 듣고 얼른 가서 대원사에 관련된 설화를 채록했다. 스님은 밤이 깊도록 열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스님은 대단히 재치 있는 이야기꾼이셨다.
    줄거리
    지장스님은 신라 선덕여왕의 아들이다. 스님이 되셔서 차씨, 볍씨 등 다섯 가지를 가지고 중국 안휘성으로 가셔서 불법을 펼쳤다. 중국에서는 99m나 되는 큰 동상을 세워서 존경하는데, 한국에는 그런 공간이 없고 김지장 스님을 모르기 때문에 대원사의 지장전을 복원하면서 김지장전이라고 하고 김지장상을 모셨다. 그리고 거기 절의 차 씨를 구해다가 대원사 지장전 주변에다 심었다.
    내용
    제보자: 그니까 중국 불교에는 가장 이제 성스럽게 여기고 중국 불교도들이 다 이제 순례하는 산이 네 개가 있어요. 그게 인제 그 산서성의 그 오대산입니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이렇게 인제 상주하는 그 산이라고 생각을 해가지고 아주 대단하게 그 성지순례를 해요. 그리고 그게 이제 절도 많고, 대중도 많고 큰 스님도 많고. 그래서 오대산 불교문화축제는 세계적인 규모로 이루어집니다. 그 다음에 이제 두 번째는 저기 사천성에 아미산이 있어요. 아미산은 인제 보현보살의 성지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제 낙산대불(樂山大佛)이라고 이제 아미산이 사천성의 최고 관광지에요. 그래서 이제 국제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흡수가 되고. 또 하나는 여기 이제 절강성의 이 보타산이 있어요. 보타산은 이제 관세음보살이 항상 계시는 그런 성지에요.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안휘성에 구화산이 있는데. 조사자: 안휘성? 제보자: 네. 안휘성. 안휘성은 지장보살의 성지에요. 그런데 인제 이 네 개를 4대 불산이라고 합니다. 그래갖고 이 네 산은 중국 불교에서는 다 이 순례를 해요. 그마만큼 그 소중한 하나의 자기들의 그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성지순례 코스에요. 그런데 이제 다른 세 곳은 그 역사상의 인물이 아니라 경전에 나오는 보살이에요. 그런데 유일하게 역사적인 인물을 통해서 그 이뤄진 곳이 구화산의 지장보살 성지입니다. 그런데 그 지장보살이 바로 이제 신라 왕자 출신이라고 하죠. 신라 왕자 출신. 그래갖고 이 분이 인제 신라의 학설이 여기까지인데, 일단 기본적으로 알려진 것은 선덕왕의 이제 아들로 알려져 있어요. 김수충. 선덕왕의 아들 김수충으로 태어났다가 인제 어려서 중국에 유학을 합니다. 당나라 때죠. 그때는 당나라 현종 때에요. 그래가지고 그 신라의 병고가 생겨가지고 그 어머니가 궁에서 쫓겨나요. 그래서 인제 고국으로 돌아오니까 어머니가 너무 슬퍼하고 괴로워하니까 자기가 이것을 어떻게 뭐 다시 바로 잡을 수도 없고. 인간의 고통을 구재할 수 있는 것은 불법 밖에 없구나하고 출가를 해요. 그래서 받은 이름이 지장입니다. 그래가지고 인제 출가를 해가지고 다시 중국으로 들어와요. 근데 들어올 때 신라에서 다섯 가지 생물자원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게 첫 번째가 인제 금지차라고 하는 차종자. 그 다음에 황립도라고 하는 벼 종자. 그 다음에 오차송이라고 하는 그 소나무, 그니까 잣 열매. 그 다음에 삽살개라고 하는 개. 그 다음에 이제 소나무인가. 이렇게 이제 다섯 가지 생물자원을 가지고 가서 중국에 전하는 역할을 해요.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갔다는 것을 그 뜻을 생각을 해보면, 이 분이 생식을 했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인제 그 쌀하고 솔잎하고 잣하고. 이런 것들을 옛날에는 물에 불려서 빻아서 먹었거든요. 이렇게 불에 익힌 밥을 먹지 않고. 육식을 하지 않고. 그러면서 이제 수도생활을 했어요. 그니까 딱 그 필요한 것을 가져갔던 거라고. 당시 쓰던 것들을. 그리고 인제 그 때 신라에서 저기 차를 가지고 와서 인제 그니까 그 옛날 스님들은 이렇게 그냥 목탁치고 불공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이익을 주는 일을 합니다. 거기서 농사짓는 것을 가르친다든가, 다리를 놓는다든가, 저수지를 만든다든가. 이런 걸 옛날에는 스님들이 다 했어요. 그래서 인제 이 지장스님도 마찬가지로 거기 가서 벼농사 짓는 것을 가르치고. 또 차를 재배해서 생산하는 걸 가르치고. 그 다음에 이렇게 저수지를 모아서 가물 때 이렇게 물을 쓰고 농사짓는 법을 이렇게 이제 가르치면서 인제 그 쪽에 그 성자가 돼요. 근데 이제 그 쪽에는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이 도교의 그 도사들이 많은 곳입니다. 원래 구화산도 이 도교의 그 일흔 두 가지(72가지) 그 성산 중에 하나에요. 그럼 이 스님이 이제 처음으로 거기를 갔을 때는 스님들이나 절이 없고 도사들만 있어요. 그러면 다른 종교 사람들한테 자리를 내줄라고 하겠어요? 이제 여기서는 영적인 파워게임이 시작됩니다. 여기에서 인제 그 어떤 말하자면 수가 떨어지면은 거기 발을 못 붙이는 거예요. 그 산의 주인이 인제 그, 산의 주인이 무독 도명존자 아버진데, 그 산의 주인을 찾아갑니다, 이 김지장 스님이. 그래가지고 “내가 절을 하나 짓고 싶은데 땅을 조금만 주십, 시주해주십시오” 그러니까 “얼마만큼 땅이 필요합니까?” 그러니까 가사를 풀러가지고 “이 가사를 덮을 땅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땅이야 내가 못 드리겠소? 어디 쪽에 필요합니까?” 하니까 가사를 탁 던져. 가사를 던지니까 가사가 탁 커지면서 산을 다 덮어버려요. 그러니께 이제 그 저 이 부자가 그 감동을 받고, 이 분이 도인이구나. 이렇게 깨닫죠. 그래가지고 산 전체를 시주하고. 그 다음에 자기 아들을 그 제자로 만들어요. 그래서 인제 그 구화산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김지장 스님이. 그래갖고 이제 이렇게 그 수도를 할 때 보면은 아무런 어떤 욕심이나 이런 게 없이 절에 가 보면은 솥단지에 거미줄 쳐져있고. 이렇게 항상 앉아서 꼿꼿하게 불도 떼지 않고 그렇게 사는 걸 보고 사람들이 이제 감동을 받아서 인제 절을 지어주는데. 그 중에 이제 산신이 자기가 이제 그 도를 닦는데 어떤 모든 그 세속경계를 뛰어 넘었는가 시험해보기 위해서 자기 딸을 보내요. 딸을 보내갖고 이제 유혹을 합니다. 그런데 인제 유혹에 김지장 스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걸 보고 산신이 감동을 받아가지고 인제 샘을 파서 가까운 데에 우물을 만들어줘요. 이제 그런 우물들이 내려오죠. 그래서 인제 이 분이 인제 행적이 뚜렷한 것이 뭐냐면은 당시(唐詩), 당나라 때 시인들의 시를 쭈욱 모아놓은 게 당시인데, 당시가 김지장 시가 두 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가 우리나라 차 시의 원조에요. 차 시로서 가장 오래된 시가 김지장 스님이 남긴 시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 차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에요. 조사자: 그러네요. 그러면 우리 대원사하고 연관된 것은 어떻게 있어요? 제보자: 인제 그 내가 구화산은 여러 번 갔죠. 구화산은 여러 번 가고. 중국에서는 이제 김지장 스님 선양사업을 아주 대대적으로 해요. 그래갖고 이제 그 세계 최대의 불상이 99m 대불을 세웠어요. 그것도 이제 99m만 해도 높은데, 이런 큰 산 언덕에다가 이걸 세워놓으니까 그냥 그대로 하늘로 솟아올라요. 그러면 이제 불상만 세운게 아니라 그 입구에다가 석가탑, 다보탑을 세워놨어요. 이런 이제 신라 왕자가. 그래서 경주에 있는 그 석가탑, 다보탑을 세우고 그 입구를 큰 대원문화원이라고 해가지고 아주 이제 부처님의 일대기부터 해서 이제 구화산의 역사, 그 어떤 구화산을 방문했던 역대 왕들, 문인들, 시인들, 이런 신자들, 거기에서 만들어진 문화들을 전부 그 전시를 합니다. 엄청난 규모의 전시관이 그 구화산에 있어요. 근데 이 김지장 스님 고향이나 한국에서는 김지장 스님 이름도 모르거든. 이제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이름이나 좀 알지. 자세하게는 또 잘 몰라요. 그때 처음에 차 문화 김귀례 사장 있을 때는 그 때 같이 가가지고 우리가 인제 또 얼마씩 시주를 해가지고 비석을 하나 세운 게 있어요. 그래서 인제 한국에서 이제 한국 출신이면서 한국에서는 잊혀지고. 또 이제 중국에서는 그 4대 보살로. 말하자면 모택동 동상도 그렇게 크게 안 세우는데 신라 왕자 그 김지장을 그렇게 크게 세워서 추념을 하고. 우리가 저런 욘사마라든가, 그런 뭐 영화배우 한류열풍이 있는데 이 사람들의 어떤 인기는 30년을 못 갑니다. 저게 이제 10년, 30년 지나면 다 잊혀져요.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도 중국인들은 이제 기억을 못 합니다. 근데 이제 저 김지장 스님 같은 경우는 1,200년이 지나도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마음속에 기억이 되고, 하나의 마음 속에 이렇게 받들어요, 지금도. 이제 음력 7월 30일이 이제 지장스님의 저기 열반하실 땐 데 이때는 전국에서 한 30만 명이 모입니다. 30만 명이 모여가지고 전부 또 다 밤을 세워요. 밤을 세우고 한 3일간 기도를 하는데 이 때 이 사람들이 올 때에 전부 자기 어머니 수의를 가져와요. 이게 수의를 가져와가지고 여기다가 지장보살 도장을 받아갑니다. 그러면 이제 또 이걸 받아가지고 자기 부모님 돌아가시면 이거 입혀서 저승으로 보내드려요. 그러니까 그런 효 문화 이런 것들하고 김지장 스님하고 다 연결이 돼 있어요. 그니까 지옥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이런 것 때문에. 그래서 이게 종교행사로서는 그 구화산의 지장절 행사가 중국에서 제일 커요. 근데 그 뿌리가 이제 그 김지장 스님이죠. 당나라 때 이제 그 숙종황제, 숙종황제는 직접 이제 금으로 인을 만들어서 지장보살께 이제 하사를 했는데 그게 이제 지장이성금인(地藏利成金印)이라고 해서 지금까지 그게 내려옵니다. 중국 문물의 보물로. 그 다음에 이제 명나라 때는 그 순종황제 이런 분들이 이제 대대적으로 그 시주를 하고 이제 귀의를 했어요. 청나라 때는 저 강희 황제, 건륭 황제 이런 분들이 이제 김지장 스님을 흠모해가지고 이 글씨 편액을 내려요. 그래갖고 이제 분타보교(芬陀普敎) 이런 글, 그게 지금 글이 지금도 현판으로 그대로 내려옵니다. 그니까 이제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신라의 김지장 스님에게 그 법력에 귀의를 하고. 그 다음에 중국의 많은 시인들, 고승들, 화가들 이런 분들이 이제 구화산을 찾아와서 남긴 시들이 굉장히 많아요. 또 이제 당나라 때는 당대에 같이 살았던 분들이 누구냐면 이태백이에요. 이태백이 인제 그 스님을 흠모해서 지장보살창을 쓰고. 그니까 이 분은 이제 역사가 뚜렷하고 미친 영향력이라는 것은 아주 상상할 수가 없죠. 그래서 여기서는 그 우리나라에 그런 공간이 없고 김지장 스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 여기서 지장전을 복원하면서 김지장전이라고 하고 그 김지장상을 모신 거죠. 일반 그 지장전이 아니라. 그리고 거기 이제 지장 그 차 씨를 구해다가 주변에 심고. 그리고 이제 거기다가 조사자: 그럼 그 차씨는 중국에서 직접 구해다가? 제보자: 예. 구화산에서. 그래서 이제 헌다도 한중일 차 문화 대회도 그 전에는 다행제하고 같이 했잖아요. 그 때도 이제 김지장 스님한테 헌다한다는 뜻으로 삼국의 다인들이 인제 이런 의미로 부여를 했죠.
    저작권
    상업적 사용 금지
    3-10_08_FOT_20160829_KYK_HJ_0004 김지장전 차나무
    3-10_08_FOT_20160829_KYK_HJ_0004 김지장전
    3-10_08_FOT_20160829_KYK_HJ_0021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은 로그인 후 사용이 가능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