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0_08_FOT_2016113_KYK_LSY_0002
    조사장소 :
    보성군 광주시 서구 쌍촌동 1001-35
    조사일 :
    2016.10.13.(목)
    제보자 :
    이상영, 64세, 남, 대졸. 원주민
    조사자 :
    김용국
    구현상황
    지난번에 문덕 이남섭 구술자에게 채록을 할 때 소개 받은 구술자를 전화 연락 후 광주에 있는 구술자의 사무소에서 밤 늦게 만났다. 구술자는 어려서 보고 들었던 성주 이씨가 가내에 정착하게 된 것, 가천현 이야기, 옛 고개, 온수골 전설, 회방연 이야기를 침착하게 자세히 들려주셨다.
    줄거리
    가내마을에 가천현이 고려 중엽부터 조선 초기까지 있었다. 가내마을에 지금도 현청터, 객사터, 석양사, 역터, 불당골 등 유적이 있다.
    내용
    가천현이 있었던 이야기를 할게요. 가천현이 있었다는 얘기는 옛날 어른들로부터 들었었는데, 도대체 언제 가천현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게 궁금해서 우리 도문화재 전문위원에게 부탁을 해서 과거 기록을 확인해 달라고도 하고, 석양사 절터를 같이 방문하면서 이야기를 했더니 가천현은 고려 중엽부터 조선 초기까지 있었대요. 가천이라는 지명은 옳을 가에 내 천인데.... 남방 정자 같은 개울이 흐르고, 입 구자 같은 마을이 있다고 해서 옳을 가자 같이 생긴 마을이고, 내가 있어서 가천이 된 겁니다. 가천에 옛날부터 구전되어 오는 얘기 중에 현재 마을 주차장 바로 옆에 있는 대나무 밭에 객사터가 있었다고 얘기를 하는데, 보통 새터라고 얘기합니다. 객사터의 사터가 새터가 되어 새터라고 얘기를 합니다. 대 밭 속에 들어가 보면 기왓장도 있고 집터 흔적이 있어요. 그리고 현청터가 있었던 데는 지금 현재 마을 옆에 남양으로 된 논이 있는데 옛날 지적도를 보면 그 논까지의 길이 지적도에 나타납니다. 지금 현재는 흔적도 없지만, 아마 일제 시대 때 최초의 지적 측량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길이 있었던 거 같아요. 거기에 현청터가 있었다고 어른들한테 얘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역터는 지금 현재 가내마을 이웃 골짜기에 간역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거기에 간이역이 있었다고 해서 간역골이라고 불리고 있고, 간역골은 역이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부잣집 상인이 있었고, 그 부잣집에서 동전을 많이 모아뒀던 것이 어쩌다가 땅에 묻혀서 지금까지도 쇳물이 나온다는 그런 전설이 있는데, 쇳물과 똑같은 녹슨 물 같은 것이 논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가천현이 있었을 당시에 향교가 있었던 자리는 가천 윗마을에 교촌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향교가 있었다고 해서 교촌이고, 보통 생기터라고 하는데 향교터가 변음이 되어서 생기터라고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향교터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석양사 절터가 있습니다. 석양사 절터에는 깍은 주춧돌과 석탑이 있었던 석탑 탑재가 있고 우물도 있고 기왓장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춧돌을 보고 문화재 전문위원은 한 눈에 이건 조선 초기 아니면 고려 말기의 주춧돌이라고 바로 아시더라구요. 또 교촌 마을 뒤쪽에 가면 구절골 터가 있는데 구절골에는 절터 뒤의 바위 틈에서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먹을 수 있는 쌀이 끼니 때 마다 조금씩 조금씩 나오다 보니까 밥을 짓는 동자승이 너무 배고픈 나머지 바위틈을 막대기로 긁어 버려서 그 뒤로 식량이 안 나와 폐절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촌마을 저수지 쪽으로 올라가면 초마골이라는 계곡이 있고 바로 옆 계곡이 불당골이라는 계곡인데요. 불당골 계곡에도 옛날에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내마을과 교촌마을 중간 쯤에 탑저골이라는 들이 있는데 탑저골에는 옛날에 탑이 있었던 걸로 전해지지만 지금은 탑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천현이 있었을 당시 가내마을이 아주 번성하였을 것이고, 번성하였을 당시에 도자기를 굽던 흔적이 있던 곳이 교촌마을 가까이, 가내마을에서 올라가다보면 교촌마을 조금 못가서 오른쪽에 피아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그 피아골 골짜기 위쪽으로 올라가면 백자를 굽던 도요지가 있습니다. 백자 파편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내마을에서 아래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배낭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배나무골이라고도 하고 배낭골이라고도 합니다. 그 배낭골 위쪽으로 올라가면 옹기 도요지가 있습니다. 옹기 파편들이 많이 있고 구웠던 흔적들이 있습니다. 옹기 도요지 근방의 산 이름이 백두산입니다. 백토공이 있다고 해서 백두산인데 아마 백두산에서 백토를 채취를 해서 백자를 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작권
    상업적 사용 금지
    2-10_08_FOT_2016113_KYK_LSY_0002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은 로그인 후 사용이 가능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