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0_07_FOT_20160529_YIS_YYS_0001
    조사장소 :
    보성군 복내면 일와리
    조사일 :
    2016. 5 . 29. ( 일 )
    제보자 :
    윤윤순, 78세, 여, 학력 무, 시집 온 토박이
    조사자 :
    양인숙
    구현상황
    아는 사람도 없고 무작정 도대문을 찾아 들어갔다. ‘일와리’라는 동네 이름은 들어봤지만 마을을 찾아 들어 간 것은 처음이었다. 미리 전화를 한 것도 아닌데 도대문 바로 앞에 집에 나무를 자른 흔적이 있는데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찾아들어갔는데 마침 윤윤순 어르신이 몸이 아파 누워있었다며 문을 열고 나왔다. 도대문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싶다고 했더니 잘 아는 사람을 불러주겠다고 해서 그냥 들은대로만 알려달라고 청했다. 두 칸 마루 집까지 안내를 해주며 예전의 이 마을의 부귀영화가 어찌 하였는지를 알려주었다.
    줄거리
    도대문은 일와리 마을에 살던 부자들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성을 쌓고 문을 만들어 동네사람이 아니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든 문이다. 그러니까 도둑을 막기 위한 대문이라는 뜻이다. 당대 천석을 이룬 집안이 있을 정도로 부를 누리던 마을이었다. 배고픈 이들이 찾아오면 도대문 밖에 세워놓고 먹을 것을 줄 정도로 철저히 외부인을 못 들어오게 막았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돈이 있다고 어찌나 교만스럽게 하였는지 어느 날 도사가 찾아왔다. 저 묘를 파면 더 부자가 될 것이란 말을 믿고 묘를 파보니 황소가 턱 버티고 있었는데 속은 줄을 알고 그 도사를 쫓아가보니 묵석골로 들어가는 길목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아무리 물을 퍼내고 뒤져도 찾지 못했는데 그 후로 일와리에는 흉한 일이 일어나고 살치마을이 일어나는 현상이 있었다 전해진다.
    내용
    당대 천석을 했어. 인자 돌아가셨는디 여가 그로코, 지금도 일곱집인가, [손가락을 꼽으며] 한 집이 두 집 서이 너이 다섯 집이 여섯집이 일곱, 일곱집이여. 일곱집이 천석을 했는디 그렁께 지금도 전부 이간마루여, 지금은 뜯어부렀는디, 보상받고 나가부르고 그래갖고, 그래도 이간마루 있는 집이 지금도 있어. 한 집이 두 집이 세집이, 지금 뜯을라고 보상받고 지금 또 있고 그렇게 이간마루 있는 동네는 이 동네 봤네. 그렇게 떵떵거리고 살어 이간마루 지어놓고, 나도 태어나기 전에. 나도 태어나기 전에 고로코 부자가 많앴었다요. 그래갖고 여기다가 [도대문 밖을 가리키며] 놔두고 동냥을 줘, (아, 못 들어오게 하고) 대문을 해서 딱 닫어 놓고 종이 와서 여그서 줘. 여그서 보내부러 마을에 못 들어오게. 긍게 하도 괴(교만)을 부래, 부자가 많이 삼서 그렁께는 도사 중이 와갖고 도사였어 도사, 옛날에 와갖고 저 묏등을 파먼 참말 부자가 될 것이고 참말 부자가 나것소 그랬어, 그렁께 그 묏둥을 팠어. 판게 그냥 소가 탁아악허니 버트고 인날라고 버트고 있드락해. 그렁게 그냥 그 도사 중을 죽일라고, 죽인다고. 그 묏 판사람들이 쫓아강게 저그저 힌적굴이라는 마을이 있어. 골착이 있어. 그리막 쫓아강게는 딱 들어가불드라네. 물로오, 분명히 들어갔는디 아무리 헤매고 찾아도 없어. 그렁께 아 이것이 도사였구나. 그래갖고 그래갖고 여그는 폐가가 되고 살치가 당대 천석을 하드라네. 요 너머가 살치거든. 그래갖고 글 때 여가 폐가가 되면서 동네가 안 좋아지고. (묘를 판 뒤로) 판 뒤로, 안 좋아지고, 옛날에는 여그가 성이여, 담도 이롷고 딱 싸지고 저쪽 칸도 딱 싸지고 그랬어. 여 문간이 아니먼 동네를 못 들어가. 옛날에는 그래갖고, 옛날에는 대가 싸악 뒤로 다 있었당만 산에가. 그래갖고 대가 요만씩[팔뚝을 내보이며] 헌 놈이 나갖고 비어갖고 시렁대를 쓰고 막 그랬다네. 대나무 요로코 굵은 놈이 나갖고, 그랬는디 동네가 폐가가 되고 그러면서 대나무도 없어지고 그렇게 해갖고 인자 그 사람들이 얼마나 인자 잘 살았는고 묏등도 요로고 거그 거 나 온께 논을 쳐서 벌어갖고 회를 해갖고 요로케 [손으로 회로 관 놓을 자리를 만드는 시늉을 하며] 요리 요로코 해 갖고 있었는디 세상이 이로고 됨시로 논 만들어서 벌어묵드라고. 그래갖고 널 맨키로 해 논께 널만치로 나와 있어. 그랬등만은 애기들이 가갖고 망치로 막 걍, 매댕이를 파갖고 깨갖고 본께 그렇게 시체가 좋아. (시체가 나왔어요?) 어어 그롷고 좋아 뼙다구가. 뼙다구가 여그도 뼈가 있고, 여그도 뼈가 있고, 그래가지고는 저 안이 넓은께 아그들이 들어가서 놀고 그래. 옛날에 얼마나 잘 살았등가 몰라. 그래갖고 아그들이 뫼등에 들가가서 안것고 그래당께, 사람 쓴 묏둥에 그때는 고로고 회를 했는디 관을 넣고 내게 되야갖고 천장에 판자가 대져 있고 해서 천장이, 옛날에는 잘 살았든 동네여. 진짜 잘 살았등갑서 그래갖고 시상이 요로고 된께 쳐서 벌어묵었어. 그래갖고 그렇게 나와부럿당께. 각시 때는 그렇고 있든디 지금은 힌털도{흔적도}없이 없이 파부렀네 지금은. (언제까지나 있었어요) 상당히 오래 있었네야. (그러니까 요리 시집을 오셨던 거지요?) 그러제, 23살에 여그왔어. 그때 그랬는디 고로게 파분 뒤로 그로고 되야불고 한 오년 되얏것네, 못 본지가. (진즉 왔으면 보기도 했을 것인디 그랬네요) 보제 보기도 허제, 여그서 요렇게 쓰고 [아마 묘가 있던 방향을 그리는 듯] 저그서 저렇게 쓰고 그랬드라고. 긍께 그때는 그랬는디 그때는 산이었제 그랬는디 지금은 세상이 요로고 된께는 파고 흘르고 해갖고 긍께는 논을 쳤드랑께 저그 내로먼 여그 논다랑친디 말허자먼 요것이 묏등이여. 그런디 여그 논을 벌어. 파갖고 그렁께 그때는 산이었것제. 산인께 묏둥이 썼것제. 옛날 어른들이 근디 묏등을 여그다 놔두고 논을 벌어 묵드라고. 지금은 저 우게까지 쫙허니 파부러갖고 내래와부렀어어, 묏둥이고 뭐이고 다 파부러서. 흔털도 없이 내래와부러. 흔털도 없이 그냥 파 내래갖고 논을 맨들아부렀당께 그냥, 아시라 해 지금은, (어디쪽이 그래요?) 여 우게 가먼 있어. (올라갈 수 있어요?) 지금? 멀어, 한참 올라가야 헌디, (차로 못 가요?) 차로? 차로는 갈 수 있제, 차로는 갈 수 있는디 동네 뒤에랑께, 그렁께 그때는 고로고 잘 산께 동네 뒤에다 묏등을 썼라고 했등갑데. (자기들 땅인디 누가 뭐라 했것어요) 다 자기들 땅이라 그랬등가비여. 바로 거그 거 명당 판자리가 그 묏둥 바로 우게 등에가 있어. 그 묏등 파고, 폐가가 된 그 묏이 지금도 오래전 구 문답이 한마지기 있어서 지금까지 그 묏등은 관리하고 있제. 여그 산 광이[광주 이씨들을 지칭)들이 여그 산 이들이 광이딘 그 사람들이 나가고 그 밑에 사람들이 살아. 그 사람들이 여그 광이 아닌 것으로 나간사람들이, 되불고 묏등만 있제 나간사람덜은 손이 여가 없어. 한 사람인가 산가 모르것다. 그러고는 다 인자 나가부렀제. 광주 이가가 울리고 살았는디 여그서 떠났제. 저그저 참새미서 많이 산다고 허드라. 그 집안간들이. 그러고 그 밑에 사람들, 밑에 사람들이 또 아들 또 아들 그래갖고 살제. 말허자먼 저그저 쌍가마니 산소가 있는디 그 산소 손이 여그서 젤 많이 살아. 저그 우리 할아부지 산소 있어, 쌍가마니 산소. 우리 태어나기도 전에 그렇게 떵떵거리고 살던 동네인디. 전부 기와집이여 그때는 기와집이 없었는디. 초가집이고 다 근디. 이간마루 있는 동네는 이 동네랑께. 그랬는디 저리 다 묵어부렀어 그러고 전부 초가집이여. 가난해져분께, 그렁께 저그 문덕 저그 율어, 어디로 다 여그 사람 땅이라드라네. (그럼 지금도 이간 마루 있는 집이 있어요?) 있어, 여그 요집도 있고, 저 우게도 있고. 요집은 뜯어부렀고잉 (그럼 이간 마루를 볼 수 있어요. 이간 마루 사진 한번 찍을 수 있어요?) 있어 가볼까? @ 당대 천석을 하였다는 이간마루가 있는 집을 안내를 해 주었는데 집은 주춧돌이며 문, 마루장을 다 빼가고 마당에는 풀이 무성하였다. 잘 살았던 부잣집답게 각종 과일나무며 약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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