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는 삽으로 찍어갖고 저 수댓골이라고 수양 뒤에 꼴창, 거그서 삽으로 찍어불고. 그런 사람, 바로 이 동네 두 형제가 자기 큰형님을 바지게로 짊어지고 갔어, 나 어려서 보면. 그래서 무엇인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통 그런 소리 하지 마라, 그란디. 나중에 크면서 알고 보니까 삽으로 찍어서 주게, 인공 때는. 경찰들이 자응 경찰이 완도, 청산까지 내빼부렀거든, 6.25 때는. 그란께 우리는 그것도 몰랐제마는 나중에사 알았제. 경찰서가 거까지 내빼부러. 그라믄 그 사람들은 밤에먼 여자들까지 와가지고 고추장 가져가고 된장 가져가고. 남자들은 톱, 꼭괭이, 꽹이, 도끼 그런 거 가져가고. 밤에믄 와. 개만 지스면 무조건 그 사람들 부대여. 그래가꼬 유치로 간다고, 유친가 어딘가 그런 데로 간다카고. (그러면 이 마을에서도 좀 아무래도 그 쪽 참여하고 또 그렇게 아무래도 피해도 있고 그런 일들이 생겼겠네요.) 두 사람이 죽었... 세 사람 죽었구나. 종삼이 아버지, 병권 씨. 또 경수 큰 성. 병욱 씨라고는 강진 군동서 사는디 선생질 하다가 저 앞에 저수지에 낚시질 하러 간다 했는디 그날 딱 밤에 맞추고 있다가 와서 잡아가꼬 데꼬가부렀어. (누가 잡아 갔어요.) 여그 놈들이제 말하자면 지방 놈들이. 6.25라는 건 뭐냐면, 거기서 막 밀고 왔닥 해도 그 앞에 전부 남로당 박헌영이 그 계열들이 미리 전부 심어나 버렸거등. 우리 공산당 하게, 그라고 댕긴 사람도 있었어. 옛날에 그 쩌 장수동 거시기도 “어야, 공산당 좋다하대.” 그라고 저닉이먼 돌아 댕겼다는 것이 그 노인이.

그런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제, 그 당시에는 해방 직후라놔서. 그래가지고 어느 정도 바람이 거리 살살 불어분 뒤에 “야 이번에는 내려가믄 된다.” 그래갖고 막 내려오니까는 그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저쪽 동네 사람 요 사람이 죽이고 요쪽 동네는 저 쪽 사람이 와서 죽이고. 직접 인민군이 여까지 몇 개월 그렇게 막 뒤에 올라오든 안 하제. 거그 지방 놈들이 천상 과거에 물싸움 했다든지, 술 묵고 화토 치다 어쨌든지 그라면 유감 있으면, “그 새끼 그 동네에 못 쓰겠다.” 그라고. 저 동네는 요 사람 죽이고, 요 동네는 저 사람 죽이고. 그것이지 말야 옛날에. 그런께 철사로 이놈을[양 팔목을 붙이며] 다 묶어가꼬 바다에다 빠쳐서 죽이며는 그 갈치나 뭐 고기를 사오면 손톱이 나오고. 옛날에는 동네 앞에 시암을 부락 사람이 싹 먹거든. 그라믄 거기서 고기를 배를 따머는 그냥 손톱도 나오고 뭣도 나오고 그런다고, 에래서 보먼. 바다에다 빠쳐 죽여 부니까는. 그라고 여그 교동 뒤에 탕수변 거기서는 자동적으로 이렇게 파져 있거든. 이렇게 딱 빠지먼 못 나오거케. 사람이 판 것도 아니고 천연적으로. 그 학송 넘어가는디 거그. 그런데 거그 탕수변이라고 한디는 전부 철사로 묶어가꼬 투욱 미트러 부린께, 딱 빠져분께 흙으로 살짝 덮어불고 그런 곳이여 말하자먼. 그랑게 사람들이 팔월 보름인가 열나흘인가는 집집마다 마당에서 혼, 혼불 그것이 궁그러 댕기다고 그래. 사람이 하래, 하래 저닉에 인민군들이 그렇게 많이 죽여버렸어. 몇 십 명을 죽여버려 안양서. 한 동네 며씨씩은. 우리 동네 한 번에 우리 동네서 둘이가 죽었구마 그랴. 한 사람은 시체도 못 받으구, 종삼이 아버지는. 저그 영암 돈박재 어디서 죽었다, 그 소리만 듣고 거그서 흙만 가져왔겄제. 그라고 나머지는 여그 병권 씨라고 그 형님은 수댓골이라고 여그 수양 뒤에 꼴창, 거기서 짊어지고 오고 발대로. 그 당시에 죽은 사람들. 골치 같은디 산에 가서 죽은 사람도 있고, 나무하러 가가꼬도 그냥 쏴 죽에 버린 것도 있고. 그것은 지금 알고 보면 쩌그 저 거시기 산사람이여. 그것은 6.25 전이제. 6.25 전인디 그거는 나 쬐깐 했을 때니까. 그거이 여수사건 났을 땐 거시여 아마도. 여수서는 최창식이가 상사가 “너는 벌교로 가.”, “너는 제주도로 가.” 그라고 아마 지시를 해, 상사가. 장교도 아닌 것이 지 맘대로 했어. 그란디 그때 우리 동네 이 골목 저 꼭대기 집. 지금 집이 없제만 혼자 사는 양반이 있어 노인이. 그런디 화장실을 가니까 뭔 사람 발이 딱 이라고 있거든, 두 개가. 으트게 노인이 혼자 산디. 그렁께 인자 자기 집안 남자한테 연락을 했어. “먼 칙간에가 발이 딱 봬인다마다”, 그랑께는 지서에다 연락을 했제 그 냥반이. 그라니까 경찰들이 왔어. 아무리 나와도 안 나오니까는 탁 쏠라 한께는 작은 방으로 뛰쳐 들어가다가 맞었다는데, 그 사람이 대덕 사람이었어. 그랑께 그것이 여수사건 때 아마 그랬는 거 같애. 이제 그 사람을 쏘니까는 여기 사립 앞에서 죽었는디. 쇠판이 발에가 들어가 있응게 낫으로 이렇게 탁탁 빼낸 사람도 있었고. 나는 안 봤지만 우리 형들이 그랬어. 나 째깐했고 무섭다고 못 오게 하고. 형 둘이만 거기 가서 보고 그랬는데.

그래가꼬 저기 앞에가 우리 동네 산이 있는데 거기다 묻었거든. 그랬더니 그 뒤로 매에엔 년이 있으니까 대덕서 그 여자가 왔지. 나는 안 봤는디 막 울고불고 야단났다 해서 머시냐 근께, 그 전에 여기서 사람 죽은 사람 그 사람 마누라가 왔다간다고 그래. 그라니까 인자 잠잠해져부닌까는 소문은 났고, 그러니까 여기로 찾으러 왔 것지. 누에고치, 아니 여 고치를 몰제 이렇게 미영 잣는 고치를, 장수동 가서 누에 빼 갖고 오먼. 그라믄 고치를 몰고 있으먼 꼭 밤에 이것들이 와. 그래가꼬 인자 애기들 못 보게 하니라고 어머니가 문 널고 말래가 있으먼 즐비하니 앉았어 물래가. 그래가꼬 여자들은 장꼬방에 가서 된장, 고추장 푸고. 남자들은 톱 주시요, 도치 주시오, 먼 꽹이 주시요 그라고. 그래가꼬 뭣 없다믄, 내일 나무 해야쓴 게 애기들이. 없다 그라믄 뺑뺑 돌아댕개. 즈그들 보며는 다 연장 어따 놔둔지 다 알제 잉. 뒤안에 가보면 있고. 그래가꼬 갖고 가불고. 그람 인자 내일 아침에 애기들 보고 우리 집 엊저녁에 산 손님 왔어, 인자 그 손님으로 대접하거등 그때는. 산 손님 와가꼬 막 뭐 가져갔제, 그라믄 우리 집에도 왔어, 그라고.[웃음] 그랑께 쌀 가져 간 것은 곰차놓치 많이 대개는. 그라고 여그서 거리가 머니까는 그 사람들이 유치까지 가든 안하고 천상 여그 월계라고 여그 있거든. 이숭굴 못가서 고당 뒤에 월암 뒤에 거그. 그 부분인지 나무하러 가서 보믄 굴속에서 살았는가 어챘는가 흔적이 있고 그래. 그라믄 어디 산 손님 굴이 있더라, 그라믄 거리 구경한다고 또 끄사고 거까지 올라가고. 어덕 밑에 바우. 뒤로는 인자 여기서 장동, 장평을 통해가꼬 유치로 간다고 남자들을 또 데리고 가제. 잡어가꼬 말하자믄. 거그 굴 파갖고 굴속으로 해서. 호리가다를 파가꼬 호리가다로 해서 안보이게 비행기에서 안보이게 이렇게 넘어간다 그 말이제. 그러다 저러다 인자 전쟁이 끝났제. 땅을 파가지고 굴속으로 이렇게 들어가. 굴이 아니고 이렇게 사람 쳐서 안갈 정도 굴을 판다고. 그 그거이 꽁이로 얼마 파질 거시여. 즈그들 하는 지시가 내려오기 때문에 그렇게 했제. 그래가꼬 그것 한다고 할 때, 고등학교 댕긴 정도나 된 정도먼 모도 거기 가고 그랬거든, 미숫가리 싸갖고. 그랬는디 그라다 저라다 한께는 끝나붓제 전쟁이. 그래가꼬 우리 큰형님도 거 간다 할 때 어머니 아버지가 울고 그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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