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0_06_FOT_20160420_CSE_AYY_0001
    조사장소 :
    보성군 율어면 상율길 10
    조사일 :
    2016. 4. 20 (수)
    제보자 :
    안연요, 94, 여, 무학, 토박이
    조사자 :
    최성은
    구현상황
    율어면 문양리 상율마을 마을회관에 들려 10여명의 할머니들이 쉬고 있는 가운데 녹동댁 안연요 할머니를 모시고 옛 이야기를 들었다. 식당방에서 녹음하느라 주변에서 잡음이 들린다. 숨도 가뿌고 귀가 조금 어두운 상태라 큰 소리로 질문했다.
    줄거리
    녹동댁 안연요 님은 현재 94세 나이다. 16세때 웅치 삼수에서 예동 사는 19세된 이인래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38세된 젊은 시어머니로부터 모진 시집살이를 당했다. 남편은 군대 안가려고 다음해에 일본으로 가서 돈을 벌었는데 일년에 한번 고향에 다녀갔다. 녹동댁은 스무살에 남편이 있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시부모님도 딸 둘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 왔는데 1945년 해방이 되자 시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다시 보성으로 왔는데 고향떠난지 10년 안에 예동 고향으로 가면 좋지 않다는 말에 율어 고죽으로 들어와 정착했다가 다시 장동리로 옮겨왔고 지금 사는 문양리 상율마을에 정착했다. 남편은 나이 60에 저 세상사람이 되었고 막내 아들은 이용도는 현재 율어면민회장을 지내고 있다.
    내용
    시어머니가 서른 여덟 살 잡샀는디 마흔 한나에 막둥이를 났어. 그래 같이 늙어 시방. 그래갔고 시어마니한테 나는 머리 끄댕이도 쥐어 뜯겨 보고 뚜드려 맞기도 해보고 말도 못해 말도. (몇 살 때 왔어요?) 열여섯 살 때. (열여섯 살 때?) 열여섯 살 때 동짓달 보름날. (동짓달 보름날?) 이 그래갔고 아들은 열 아홉살 먹고. 나는 열여섯 살 먹고 그래갔고 열입곱살차 남시롱 아들 군대 안보낸다고...갔고 일본 보내 부러. 그래갔고 일년에 한번씩은 나온디 인자 나와 갔고 네 번차 나와 갔고는. 조까만 보태면 눈치 안보고 빨래 같은거 해 입고 살림을 조까만 돈을 보태면 하숙친 놈 갔고 살림을 할 수 있다고 같이 간다고 근갑서. 방에서. 근께 그 이튿날 점을 하러 가세. 그래 데고가면 못쓴다고 그래드만. 그래 데고가서 할수없이 인자 거시기해서 열 여섯살 묵어서 스물살 때 일본을 가끄만. 그래갔고 스물 다섯 살차 남시롱 일년 살고 난께 이년 만에 딱 여그것 어울려갔고 두 내외 딸 둘 딸 둘하고 덱고 일본에 오셔 부렀어. 그래갔고 스물다섯살 때 해방이 되아 부렀어. 그래갔고 인자 또 죽어도 선산 밑에 가서 죽는다고 또 어찌 시어매가 서둘고 댕긴지 저 나와 부렀어. 일본서. 마늘도 숭거놓고 감자도 놔놓고 농사도 지어놓고. 논 한나 앞에 닷마지기씩 지어 놓으면 군대를 안간다고 한께 열아홉마지기를 지어 놔두고 그때 돈으로 돈 천원씩 받고 진 수고비 천원씩 받고 가만 나두고 나와 불었제. 고추도 해 놓고 마늘도 숭거 놓고 고구마도 놔놓고 다 해놓고는 나와 불었어. 그래갔고 처음 예동서 예동서 일본을 갔는디 십년 안에 본 고향으로 가면 안좋다고 그런께. 고죽 가 이모 우리 시이모가 한 분 사신디 그 이모 아들 사위를 만나갔고 요리 들어왔어 인자. 그래갔고 고죽서 이제 장동으로 장동 거 길가의 길가의 집을 사갔고 그리 이사를 또 왔서. 그래갔고인자 옛날에 행주로 돈이 많았던가. 농사를 없는 사람들 지어서 사서 지어 묵으라고 준디 시방 상례양반 집 앞에 다랑치 다랑치 논이 시방은 거름도 사서 할라먼 있고헌디. 그때도 거름도 없고 산에 가서 버들버들한 참생이 거 낫으로 비어다가 작두로 썰어갔고 모판에다 놓고 진나락을 쳐갔고 인자 나락 요만썩허니 촉톡헌디 그런 것을 숭거. 그런께 학생들이 지냄서롱 나랑이 시집가네 나랭이 시집가네 해갔고 농사를 잘 지어갔고 누부가 큰댁에가 있는디 누부 큰댁이....그래갔고....가갔고 농사 지어 놓은 것 손도 안대고 그대로 놔두고 가갔고 인자 방 한나 정재 한나 두칸밖이라 어따 들여 놀띠가 없어. 방애를 찧어 가갔고 쌀을. 그래갔고 마당에다...놓고 마당에다 해 놨섰선갑어. 그랬던가. 죽어버린 oo이가 그것을 알고 개정지 밑에 시방 도안댁에서 번 논 그것 논이 즈그 집으로 딸렸고 근다고 어찌....이 양반들이 그러네 인자. 헐뜯게 해서 넘어가 불었어. 그래갔고 쌀 가마니를 그래갔고 요리 들어 왔어 우리가 인자. 내려온께 작은방 큰방 한나 보여주고는 작은방은 비주지도 안해. 아이고 말도 못해 말도 못해. (어디서 고향이 어디쇼?) 예? (고향이 어디여?) 예? (고향?) 고향. 처음에 본고향은 인자 시집은 예동으로 왔고 인자 친정은 웅치 삼수라 하는디로 삼수라. 삼수 녹동 거가서 우리 친정동네여. 그런께 그런께 녹동댁이제 (음 녹동댁이여?) 그래갔고 녹동 녹동은 팔도촌이고 바깥은 박씨들이 자작일촌이고 가운데 삼수는 안씨들이 전부다 자작일촌이고 인자 우리 안씨들은 가운데 똠은 인자 아 안씨들이 전부다 살고. 그래서 아이고 말도 못해. (지금 나이가 얼마요?) 이? (무슨 띠요?) 이? (무슨 생?)....(나이?) 나가? (음) 시방 나이 구십이 넘었어. (몇 살?. 무슨 띠?) 예? (무슨 띠? 띠) 구십이 넘어 (띠가 뭐여?) 이? (띠?) 돼지띠 (돼지띠?) 저기 너이라든가 서이라든가 근다데 그래갔고 (예) (남편은?) 이? (남편?) 이? (남편 어딨서요?) 남자는 시방 죽은지가 30년도 넘어. 60에 죽었어. 60에. (60에. 여기 살다가). 그런께 그해 난 손지가 서른 몇 이드란께. 그래 너희 할아버지 돌아 가신지가 30년이 넘다 그런께 예 그래. 시방 그 손지는 청와대에 저 서울 청와대에서 근무해. (남편 이름이 뭐요?) 이? (남편 이름이 뭐여? 서방님 이름) 이인래 (이인래?) 이 (음 광주이씨?) 이? (광주이씨?) 광주이씨 (이인래) 예. (아줌 이름은 뭐요?) 에? (녹동댁 이름은?) 나 이름은 안여유고 (안?) 안여유 (안여유?) 예 (안연요) 예 (그러면은) 내가 (회장 엄마요?) 예? (면민회장 엄마요? 이용도씨) 이 (엄마요?) 이가 (응) 이가제 지그아버지가 이가인께 (이용도) 이 용도요 용도도 이가고. (용도가 아들이요?) 우리 아들 막둥이 (아들이야 막둥이 아들) 예. 거 집에 (나가 눈이 안좋아 갔고 눈 수술을 광주가서 했드만은 눈이 무장 안뵈여 갔고 뭐시 보이들 안하고 그냥 눈도 안보이제 귀도 먹제. 멍챙이요 멍챙이. (알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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