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코드 :
    1-10_06_FOT_20160419_CSE_JGS_0003
    조사장소 :
    보성군 율어면 고음길 133-15
    조사일 :
    2016. 4. 19 (화)
    제보자 :
    정경성, 79, 남, 중졸, 토박이
    조사자 :
    최성은
    구현상황
    율어면 고죽리 고음마을 마을회관에서 정경성 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에 한 때 한약방으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사정상 그만 둔 상태이다.
    줄거리
    율어면 고죽리 고음마을에는 괴바우가 있는데 고양이를 쏙 빼닮았다. 풍수지리로 쥐를 잡는 형국이라 한다. 기 바위에다 창원박씨 열부비를 새겨 박았는데 그 열부는 결혼한 후 근행갔다가 신랑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논 네마지기를 받고 수절하여 살았는데 양자를 들여 그 아들이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열부비를 세우려면 정식적으로 열녀문을 세웠어야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고양이로 보는 괴바위에다 비를 새김으로써 좋지 않은 소리를 듣고 있다. 고음마을은 마한시대에 웅복현이라 불렀다는데 지금도 감옥거리라는 지명이 전해 온다.
    내용
    괴바위에 있는 거 거있써라 거그 한나 이름을 확실히 몰르것네. 지갑 지갑 거세기 하동정씨 지자 갑자여. 뜻지자(志) 육갑갑자(甲) 지갑씨인디. 양아들은 두현이제. 이 두 두현이여. 두현씨 그 분이 한 백석 받았어. 여그서. 그 창원박씨 할머니가 논 너마재기를 가지고 왔어. 그런께 옛날에는 일단 결혼을 하면은 근행이라 그래 근침이라고 그래? 그것을(근행) 일단 친정에 가서 여 근행을 갔는데 일년만 있어야 여그를 와. 근디 있는 동안에 남편이 죽어 불었어. 그런께 얼마 살지도 않고 그냥 거세기 했는데 어찌꺼여 근께 글지만은 옴시롱 자기 몫갔고 거이 부자로 산께 가지고 왔는디 집안 논이 백개논이라고 옛날에도 경지를 안했는데 실 낙지가 되었다 장구배미가 되었다가 지락 질어. 백개논이라고 헌디. 개가 백개나 된다고 해서 백개논이라고 그래. 근디 그 논 너마지기를 샀어. 그래갔고 인자 혼자 살 수가 없은께 인자 양아들을 두었제. 두자 현자 인자. 양아들을 두었는디. 그 논을 갖고 그렇게 기반을 잡아서 논을 산 것이 한 외작을 백석을 받아들여 갖고 부자가 되었어. 그런께인자 부자가 되었은께 좀 자기 어머니 양어머니 비를 세울때도 이 효열비를 세울라 그럴라면 좀 멋지게 해서 장소 잡아서 해야 될거이. 괴바우에다 거그다 파갔고 내력도 없이 그렇게 해놔부니. 임오년에 했던 말이요. 임오년인께. 지금으로부터 75년 되었어 인자. 우리 마누라가 임오생이라 내가 잘 알제. 75년 전에 1942년에 그때 인자 그 그 했단 말이요. 그 그 세웠는디. 그 얼마나 남편 얼굴도 모를 정도로 된디. 부잣집이라 그놈 몫으로 인자 와서 살아라 하니께 수절을 하고 산께. 진짜 열녀 아니요 열녀. 그래서인자 양아들이 그렇게 부잣집으로 삼시롱 그래도 논을 옛날 논으로 너마지기나 갖고 왔은께. 그놈 반아치만 들어서라도 비를 분명허니 정문을 이 정려 정려문을 세워갔고 그 효열비를 세워줘야 된디. 그 후손들도 다 똑같애요. 지금 서울서 의사하고 모도 있고 그래. 인자 즈그 손자는 돌아 가셨는디 모도 우체국장도 하고 거세기 보문고등학교 선생도 하고 저 교 교장도 하고 그런디. 그 아들들이 전부다 잘 되갔고 의사도 있고 그래 서울서. 그런디 묘도 다 묵하불었어요. 안해. 여 여기서 좀 못 자기 큰집 작은집 된 사람이 벌초도 해주고 그래. 소용없어 소용없어. (안 내려와요) 그런께 안해요. 그렇게해서 부자로 만들어서 옛날에 어떻게 해서 대학을 보내 겄어. 옛날에. 일본 시대때 대학을 보내. 거 원근 부자이기 때문에 그런걸 갈치고 그랬는디. 그렇게 해놨으면 참 즈그 그렇게 거세기 할아버지가 즈그 할아버지 할아버지 인자 거세기 봉동때부터 택조남았은께 즈그 할아버지가 그렇게 해서 비를 그 증조 할아버지인디 인자 그 거세기 한분이 돌아가신 분이 즈그 할어버지가 그렇게 해서 괴박돌에다 박아났은께 동네에서 뭐라고 하고 근께 정당하니 임오년에 요렇게 비를 했지만은 이렇게 해서 해 드린다 해서 정려문을 세워갔고 네 경퉁이 지둥 해서 그렇게 정당하니 효열비를 해서 그렇게 집은 못 짓 터라도 해서 세와야 된디 그렇게 허라그래도 소용없어. 또 교인들이 되갖고 믿들 않고 (할머니는 어디 사람인가요? 어디서 시집왔데요?) 몰라나 나 거이 어 어딘지도 모라. 하튼 외서 어디 외근방에서 (외서쪽에서) 응 외서. 창원박씨인데. 그런께 거 그리고 더구나 이름 있는 거 괴바위에다 그것을 박아불면 쓸거여. 고양이가 날래게 해서 쥐를 잡아 먹고 막 그럴거인디 거기다가 그놈을 박어서 거새기 해 놔불었으니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욕을 안했겄어. 말도 못하게 욕을 하고 그랬제. 근께 그런 후세에라도 욕을 안얻어 묵을 거새기는 해야 돼야. (거 괴바위 있는데 거기에는 다른 바위는 없었습니까?) 없어. (하나만 있었습니까?) 하나만 있었고 그 앞에는 삼 삼굿거리라고 삼을 굽고 그랬어. 바우 한나 없어. 근께 거 근께 거가 저쪽 저 가서 딱 보면 고양이가 쭉 모가지 쭉 빼갔고 내려온 형이 딱 그렇게 돼갔고 있어. 근께 거기를 괴바우라고 했는디 인자 거 어 요런 지석묘 뭐 거새기 허댁기 그런 거새기가 아니여. 저렇게 큰 거새기를 어떻게 허덜 못하고. (화순에도 있습니다) 근께 화순에도 있는데 요렇게 크던 안해. (근께 제가 보기에는 화순에는 여흥민씨 세장산 이렇게 써 졌잖아요. 이건 효열비 이렇게 써 졌는데. 그 어떻게 보면은 묘똥 위에다 묘를 묘비를 써놓은 그런 셈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그 말씀하신 웅복현 거리에 관련된 요 지명도 좀 있습니까? 뭐 감옥이라든가 뭐 이런거?) 웅복현 그런 것이 한 개도 없다닌깐. (감옥배미나 옥배미 이런 것도 없습니까?) 전혀 없어. 단 여가 있는 것이 근께 점골 사그재 사기 굽고 회파고 회구탱이 회파고 근께 하여튼 여가 그 감옥까지 다 있다고 그래요. 감옥. (감옥이 있다고요) 예 이 옥터라고 (옥터 지금은 무어라 부릅니까) 평야 거기도 옥터걸이라고 불러. 옥터. 옥터거리라 그러는디 그냥 또 그냥 연에내 또 저 풍수들이 와갔고 옥토끼라고. 토끼형국이라고. 옥토끼라고. 옛끼 무식해도 에지간히 무식해야지. 곤복이라고 그냥 곤복 그냥 뭐 따곤자(坤) 복복자(福) 곤복이라고 그렇게도 쓴 사람도 있고 그래. 여기도 곤복일동 그래놨더라고. 우리 거이 저 험시롱. 거 거세기 곰복 한글로 곰복이고 웅복이란 말이여 여가 웅복 곰웅자(熊) 엎드릴복자(伏) 그래서 저그 재각 이름이 웅산재여 곰웅자 뫼산자 웅산재. (한자로는 웅 웅복 이렇게 표기를 하고 우리말로는 곰복이) 곰복. 곰복이라고 그래 (곰 곰백이 곰배기라고 합니까?) 곰복 (곰복이) 곰복 인자 옛날 사람들은 곰복이라 그래야 알아. 여그를 (곰복이) 곰복. 무조건. 근께 고음복이라 그래된디 그냥 곰복 그래불제 그냥. (근께 요 동네사람들이 뭐라 불러요 곰복이라 합니까 곰백이라 합니까?) 곰복. 그냥 곰복이라 그런디 지금은 인자 곰복이라 그래도 저 멀리 있는 동네 있는 사람들은 안디 지금은 누가 인자 다 고죽리 살고 그 그래불고 고음부락이라고 글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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