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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장소 :
    영광군 낙월면 송이리 마을회관
    조사일 :
    2017-01-11
    제보자 :
    김성기, 남, 73세, 토박이, 낙월면 송이리 245번지
    조사자 :
    정여은(@), 한종협, 김범무, 한현선, 김효민
    구현상황
    영광 홍농읍 계마항에서 1시간 40분가량 배를 타고 송이도에 들어오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낮은 수심 탓에 심하게 출렁거리는 배에 몸을 싣고 힘들게 송이도에 들어왔 지만 그 후 조사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자주 오시던 마을회관 에도 마을 분들이 안 오시어 마을 이장의 소개로 어렵사리 김성기 어르신과 만나서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줄거리
    김해김씨 삼현파의 김씨 부인이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재가를 하지 않고 지조를 지 켰다고 하여 열녀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는 효열비도 있는데 아픈 부 모를 위해 고기를 살 형편이 안 되어 자기 살을 떼어서 몰래 고기 대신 주어 부모를 봉양하였다는 효자 이야기가 전해지고 이에 효열비가 세워졌다는 이야기이다.
    내용

    @ 어르신 저기 효자비도 있고 효열비도 있고 열녀비도 있고 그래요. 이곳이 인물이 아주 많이 난 곳인데요. 효자는 누가 효자였어요? 지금 저기 보시는 데가 저가 열녀각이거든요? 열녀각인데 김씨들…. 김해김씨. 삼현파 김 씨들이요. 저도 삼현파인데 저 비를 보면 김씨 비로 안 나와 있을 겁니다. 김씨들로 안나와있 지요? 저 씨가 김씨 아니여. 그런께 그 김해김씨. 삼현파 부인, 그 부인 비에요. 열녀각 저것이. 빈데 참말로 그랬는가는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열녀각을 세울 때는 그만한 그 열녀했기 때문에 세웠으리라 생각되는데 옛날에는 참 저렇게 안 생겼고 큰 문도 다 달렸고 뺑 둘러서 담도 다 쳐졌고 다 지하로 이러고 이어갖고 크게 있었는데 지금 김씨들이 다 가까운 저 비석 에 가까운 김씨들은 거의 나가셔서 안 살잖아요. 여기서. 그런게 우리가 집사람이 가끔 청소 도 하고 그런데 그러고 인자 효자비? @ 아니 그러니까 그 열녀가 어째서 열녀냐고요. 아! 저기 안했으께라우.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사람이 젊었어도 남편 돌아가셨어도 어디 로 재가를 않코, 애기들 나쁜 말하자면 남자랑 이러고 안해갖고 꼭 그 죽은 사람만 믿고 생을 마쳤응께 이렇게 하지 않았었나. 생각 드는데. 그래서 열녀각이라고 한 거 같아요. @그다음에 효열비 효자비도 있는데요. 그거는 누가 어떻게 부모를 잘 모셨는지요. 여기 이장님 이야기 듣기로는…. 이장님 : 그 부모님이 무지하게 아프셨대요. 그런데 그 자녀가 그 옛날에는 고기 같은 것 도 살라면 참 못 샀잖아요. 그런디 그 고기를 그 내 몸을 이 상처 나면서까지 그 살을 띠어 (떼)가지고 떼 가지고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랬으까 띠어가지고 그 모르게 어머니를 모르게 그거를 해드렸다. 그런 거시기가 그 글씨 그 뒤에는 읽어보면 그렇게 써 있대요. 우리는 그 한 자를 모르니까 그라한디, 그만치 부모님에 대한 애향심(효심)이 짙어가지고 그 자녀가 어머님 을 구하려 했다는 그런 전설이 있어요. 그 우리들은 어려놓응께 잘 모르는데 어떤 분이 영광 에서 구한문을 읽으시는 분이 와서 뒤에를 읽어보더니 그런 내용이라는. “그 효자비 내용이 뭐시오?” 하고 우리가 물었어. “효자비라고 들었는디 어째서 했는 가를 모르겠습니다.” 그런께 그 옛날에 는 그 고기를 구입을 하라고 해도 못 허 고 오직해시야(오죽했으면) 내 몸에 상 처를 내감서 그 조그만한 해가지고 그 모면을 해서 해가지고 해드렸다. 그 부 모님도 모르게 그런 자녀였다는게 거가 새겨졌다고 그러대요.

     


    열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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